11.20 월 11:33
> 뉴스 > 여론마당 > 금요시론
     
다문화가족에게는 우리 사회의 좀 더 세심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꿈에 부풀었던 결혼이민
2017년 04월 10일 (월) 10:38:36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고봉주/ 전남다문화가족센터연합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베트남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먼저 귀국했던 남편을 찾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에는 행복감에 도취해 몸 둘 바를 몰랐다.

먼 길을 떠나는 딸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을 뒤로한 체 기억도 희미한 남편을 그리며 고국을 떠나는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부자나라 한국에 가서 남편의 사랑속에 우아하고 아름답게 여자처럼 사는 꿈과 더불어 물론 잘사는 남편을 졸라(?) 힘겹게 살아가는 친정 가족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기까지 했다.

한류 드라마의 영향이었을까? 그날따라 느리게만 느껴지는 비행기 안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앞으로 펼쳐질 행복한 결혼 생활을 그려 본다.

공항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자 단번에 알아본 남편이 뛰어 와 덥석 끌어안고선 보고 싶었다며 달콤한 키스 세례를 해 줄 때에는 세상에 또 이런 행복이 있을까 싶을 만큼 황홀했다.

남편은 공항 밖에서 대기 중이던 자가용의 문을 열더니 손을 내밀어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집에 오는 내내 남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이윽고 도착한 집, 남편의 손에 이끌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온갖 진기한 나무들로 가득찬 멋진 정원과 넓은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평평한 돌길이 문 앞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문밖까지 마중 나온 시댁의 가족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시작되려는 순간,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을 치는 바람에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한국에서의 신혼생활이 이렇게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는지 비행기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한국 땅은 아름답게만 보였다.

 

 

무너진 결혼이민의 꿈

꿈은 거기까지였다.

물설고 낮선 이국땅, 이역만리 머나먼 나라 한국으로의 결혼이민에 대한 부푼 꿈은 공항에 첫발을 내딛으면서부터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더벅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무뚝뚝한 표정으로 승객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던 남편은 한참만에야 겨우 알아봤는지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낚아채 듯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턱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따라오라는 듯 앞서 걷기 시작했다.

공항 밖으로 빠져 나왔을 때에는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이가 서로 부딪히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도 남편은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만 볼뿐이었다.

공항으로 버스가 들어와 멈춰 서자 먼저 올라탄 남편이 어서 타라며 손짓을 한다.

한국 결혼이민의 환상에 대한 첫 시련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차창에 기대앉는 남편은 내내 창밖만 내다볼 뿐 한마디 말도 없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어색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어느 터미널에서 정차를 하자 내려서 다른 고속버스로 갈아탔는데 장시간의 비행이 피곤했던지 몸을 웅크린 체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쯤 잤을까, 툭툭 어께를 치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차창 밖으로 어두운 조명 속에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낡아 보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터미널이었다. 추워보였는지 남편이 벗어준 점퍼로 몸을 감싸고선 허름한 건물안에서 또 한 번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군내버스에 올라 또 얼마나 갔을까, 쿨렁거리던 버스가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꿈꾸었던 환상이 파도에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바닷가 해변이었다.

짠 소금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어두운 벌판을 가로지르는 겨울바닷바람이 살을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집은 낡은 집들을 몇 채 덧대어 대충 지은 블록집이었다.

찌든 담배냄새로 가득한 두 어 평 남짓 안방에 들어서자 가운데에 텔레비전 놓여있고 그 옆으로는 신부 맞을 청소를 했는지 이부자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기족들이 왔었는데 오늘은 너무 늦어 신부가 피곤할까봐 내일 다시 모이기로 했단다.

벽에는 닦아낸 곰팡이 자국 위로 결로(이슬)가 송알송알 맺혀있고 비닐로 막은 창문을 펄럭거리는 바람, 구멍 난 장판 사이로 시멘트바닥이 드러나 보였다.

그렇게 꿈꾸어 왔던 한국이 정말 맞는 건지 찾아오기는 옳게 찾아온 것인지 환상과 현실의 너무 큰 괴리감에 정신마저 혼미해지더니 그만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신혼의 단꿈은 사라지고 결혼이민의 힘겹고 고단한 삶이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차별과 편견을 딛고

우리고장 영광으로 시집을 왔던 한 이주여성이 들려준 결혼이민 체험담이다.

지금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는데 가족이 모두 이사를 간 것인지, 아니면 이혼을 했거나 불법체류자가 되어 어느 지역을 떠도는지 그 뒤로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행안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 영광으로 결혼이민을 온 이주여성은 40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실 거주 이주여성을 파악해보면 그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결혼이민의 단꿈을 안고 영광으로 시집왔던 이주여성 일부도 전자에 기록한 한 이주여성의 고단한 전철을 밟았던 것은 아닐까?

현재 농어촌 지역은 다문화 아동이 아니면 학교를 운영할 수 없을 만큼 다문화가족이 우리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함에도 아직 우리는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만은 여전하다.

심지어 지역을 끌어가는 지도자들마저 구시대적 편견에 사로잡혀 이주여성들을 폄하하는 것을 볼 때는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

배우자의 장애와 심각한 나이 차이, 경제적 빈곤과 함께 늘 곁을 붙어 다니는 차별과 편견은 이주여성들을 절망에 빠지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암담한 현실에 못 이겨 밖으로 눈을 돌리는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영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영광신문(http://www.yg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영광신문 | 기사제보 | 제휴안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편집규약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물무로2길 37번지 | ☎061-353-0880-0881 | fax 061-353-08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종진
등록번호(전남 아00220) | 등록연월일: 1997-02-27(창간) | 발행인 편집인 대표이사: 박용구 | 편집국장: 김성덕
Copyright 2009 영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y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