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밥상

아침을 거르고 서둘러 집에서 나와 부랴부랴 출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목격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지하철 입구나 지하철 내의 음식매장에선 즉석으로 아침을 해결 하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띠고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컵에 복음 밥을 담아 저렴하게 판매하는 즉석 밥 코너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샌드위치를 비롯해 한 끼 해결을 집이 아닌 즉석코너에서 바삐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사회가 밥 한 끼마저 따스한 집에서 해결 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과연 저런 밥이 안전하고 위생적일까 생각해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산업사회가 남보다 더 빨리 더 먼저 더 자주 행해야 하는 경쟁을 극심하게 유도하고 우리민족 인정의 상징인 밥 문화 까지 속절없이 변하게 하였습니다.

지하철에서 보면 집에서 화장을 다 이루지 못한 여자들이 그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 화장을 하느라 곁에 누가 있는지는 상관도 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틈이 생겨나지 않는 사회에서 허우적거릴까요?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자기 삶의 기준을 갖지 못하고 사회에 순종한 노예의 길을 자처 한지도 모릅니다. 물론 집안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결 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완성된 삶은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웃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외식은 진한 가족애와 더불어 가족의 소통을 담보하기도 합니다.

경쟁이 우리나라를 빠른 성장을 이룩하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쟁은 교육, 문화, 스포츠, 기업, 가정 모두가 교과서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이야기 하면 경쟁이 없는 사회를 아예 죽어 있는 사회로 치부하고 경쟁을 하지 않는 사람을 사회에서 왕따 취급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뒤쳐진 사람으로 취급 하고 스스로 다른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게 밥 문화 까지 옮겨오고, 밥도 무엇이 쫓아오는지 허둥거리며 길거리에서 베어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둥그런 밥상에서 모나지 않는 밥상을 마주하고 숭늉까지 편안하게 먹는 민족이었습니다. 그 밥상에는 평화와 미덕이 있습니다. 오래 묵힌 장으로 반찬을 만들고 앞마당에서 기른 채소로 들기름이나 참기름으로 간장에 버무렸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이렇게 제철채소로 삶아 무쳐서 뚝딱 밥상위에 올려놓습니다.

밥 먹는 문화까지 송두리째 자본의 굴기에 내어주고 경쟁의 울타리 속에 가두어 놓은 풍경이 지하철이나 시장 앞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미국은 한국보다 더 심한 길거리 음식인데 뭐 그러냐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미국의 음식문화는 애초에 한국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음식입니다. 한국의 음식은 손이 많이 가는 슬로푸드 음식이기에 외국의 음식과는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닙니다.

음식은 혼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전통음식은 혼이 있습니다. 혼은 음식의 정성과 궁합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 우리의 선조는 음식이 궁합을 이루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습니다.

그 혼과 궁합이 있는 밥상이 우리의 둥그런 밥상입니다. 둥근 것은 평등의 상징입니다. 또 한 가족 간의 소통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속담에 먹을 때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는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때리거나 꾸짖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서 그 만큼 밥을 먹으며 나눌 수 있는 말의 자유로움을 보장 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 어려운 이야기를 부모님께 합니다. 특히 돈이 궁한 시절에 학교에 납부해야 할 월납금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며 부모님의 의중을 엿보던 그런 소통의 공간 이었습니다.

둥근상을 우린 개다리소반이라고 합니다. 개다리소반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다리소반위에 다소곳이 차려진 삼찬과 봉두로 담긴 밥 한 그릇의 정서가 바로 마음의 소리입니다.

지금의 밥상과는 분명 차별이 있었고 마음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고 넉넉함이 배어 있기도 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 서둘러 한 끼를 해결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쫓기는 우리의 문화가 왠지 서글픈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 일까요! 어쩌면 식품회사가 부추 키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밥을 해 먹지 못하게 하는 마케팅이 기업의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지요! 모든 게 다 공장 식으로 바뀌는 그날이 되면 개다리소반, 마음의 소반은 박물관에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내는 우리 밥상머리에서 진한 평화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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