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수필가

코디네이터(coordinator)가 뭐하는 겁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자원봉사센터에 첫 발을 내 딛게 되었다. 모집하는 직함이 자원봉사코디네이더라는 이름 이였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에 가까운 나이에 일대일로 보게 된 면접이었다. 불쑥 그런 질문을 받고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서로 서로를 연계하는 것이다라고 답을 했던 것 같다. 어떤 직업에 영어이름이 붙여지기가 쉽지 않은데 나름 산뜻하면서도 낯설었다. 그 단어의 뜻은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해 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요즘은 꽃이나 의상, 음식에도 사용 한다. 뭔가를 돋보이고 더욱 유익하게 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말로 표현하기엔 어려웠을까하는 생각을 늘 하게 했다. 특정 물건을 대상으로 하는 연계가 아니라 자원봉사에 관련된 것을 이어주는 일을 그 이름으로 하게 되었고 지금껏 지내왔다. 이 달 말이면 어느새 10년이 된다. 감회가 새롭고 조금 더 나아가 코끝이 찡하기 까지 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몇 가지 난감함이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는데 왜 직원이 필요하지 라든가 자원봉사 하는 것을 시간으로 계산해서 실적화해야 되는 것에 대한 거리감이 있었다.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자원봉사관리자라기 보다는 자원봉사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십년이란 단어에 유독 얽힌 말들이 많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거나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말에도 십년이란 말이 들어 있다. 지나온 그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200712월 태안의 기름유출사건으로 인해 2008년 새해첫날 출근하자마자 바닷가로 떠밀려온 타르 제거작업을 하러 던 일, 그 후 궂은 날씨에도 타르제거작업을 하러 오겠다는 봉사단체가 있어 마중 나가 함께 비를 맞아가며 했던 일이며 학교를 직접 찾아가 많은 학생들 앞에서 자원봉사 교육을 했는데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했던 날은 무척 떨렸다. 무슨 말을 하고 왔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영광에 큰 체육시설인 스포티움이 생기면서 각종 큰 행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에 발마추어 지원도 시작됐다. 도민체전 · 전국체전 · 장애인체전 등이 개최되어 백여 명의 봉사자를 모집하고 교육하였다. 전남장애인체전을 앞두고 영광군청 3층에서 봉사자 분들에게 사전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 때 함께 했던 행사 관계자가 감사하다며 바닥에 큰 절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리고 지역 축제인 법성포단오제와 불갑산 상사화축제 · 군민의 날 행사에도 십년 째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축구와 농구경기 종목이긴 하지만 영광스포티움에서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진행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국제대회를 치르게 되었다. 하루 13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17간의 대 장정에 함께 했다.

2007년 처음 입사했던 때 5천명을 조금 넘던 자원봉사자 수는 2017년 현재 16천명이 넘는다. 인구대비 등록률이 28%를 넘는 셈이다. 매년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연인원도 꾸준히 증가 하고 있다. 이 모든 건 혼자만의 것이 아닌 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시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지역에서 봉사가 필요한 곳이면 언제 어디든 달려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이고 분명한 소명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영광스포티움에서 FC축구경기를 처음 시작할 때 주말이면 써포터즈 봉사자를 운영했었다. 그때 열심히 응원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봉사현장에 갔을 때 간호사가 되었다며 인사를 했다. 무척 열심히 해서 이름도 기억나는 학생이었다. 가끔 궁금했었는데 반가웠다.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1회 전국자원봉사센터 우수 직원으로 선정되어 해외연수를 다녀오게 된 것도 큰 영광이었다. 관광지를 제외한 착한여행이라면서 홍콩자원봉사센터와 백 년 전 시골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어촌마을을 방문했고 이어 대만의 마을공동체 성공스토리를 지역 이장님께 직접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홍콩의 야경을 놓치고 온 건 아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열십이란 뜻은 우리네 열손가락처럼 변함없이 완전해서 무엇이든 가득 찬 숫자로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숫자로 꼭 10년이란 시간이 강산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겠지만 그 햇수를 맞이하게 되고 보니 가득 찬 항아리라도 안은 듯, 적금을 쏟아 부어 만기라도 된 듯 뿌듯하다. 그 사이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 그러나 그 뿌듯한 느낌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까? 좀 더 많은 이들이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게 되기를 강산이 한번 변한 오늘도 나는 바래본다. 계속 노력하고 바라면서 또 다른 강산을 그려볼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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