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9월은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안해지며 무엇보다도 눈이 풍요로워지는 계절이다.

이른 봄부터 초록을 경쟁하던 산야의 온갖 풀과 나무들은 깐깐오월, 미끈유월, 어정칠월(이상 음력)의 날들을 거쳐오는동안 초록이 짙을대로 짙어져 이젠 푸르다 못해 검푸른 색조를 더해가며 푸르름의 끝자락을 향해가고 있다.

그 묵직한 초록의 사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들판엔 어느덧 벼이삭이 점잖게 고개를 숙인 채 영글어가고, 잎새들은 서서히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

가을이구나 생각하니 아직 한 낯은 뜨겁고, 여름인가? 싶은데 아침저녁으론 제법 서늘하고 ... 한 낯엔 습도 높은 마파람이불어오다가도 저녁 때가 되면 시원하고 기분 좋은 하늬바람이 마중을 나오는, 말 그대로 계절은 가을의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다.

연못가의 부들은 무성하고 길다란 잎새가 아래로 늘어지기 시작하자 곶추 선 대궁이 기세 좋게 하늘을 향해있고, 산밭에선 어른의 키보다 높게 자란 수수 열매가 탐스럽다. 어설프게 폼잡고 서있는 허수아비의 춤사위도 정중동(靜中動)으로 제법인데 참새떼들만 논밭으로 몰러다니며 분주하다.

하늘빛은 더욱 높고 파래졌으며 바람도 차분해져서 갈대도 그 무표정한 고개를 하늘 향해 내밀어 먼 곳의 그리움을 손짓하고 있다.

잎새 뒤에 숨어서 시간을 견디어 온 사과, 대추....등 가을 과일들은 연두, 초록을 지나 노랗고 불그스레한 홍조의 피부를 부드럽고 풍만한 곡선에 담아 잎새 밖으로 드러낸다.

아스팔트 도로변에선 가을꽃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피어나고, 언덕 위의 풀숲에선 바라만 보아도 향기가 묻어나는 구절초가 봄꽃처럼 요란스럽지 않게 피어난다.

달라진 것은 육지 뿐만이 아니다.

바다에선 초봄부터 부화 된 온갖 치어들마다 제법 살이 오르고 몸집도 커져있다.

여름내 뜨겁고 후텁지근한 햇빛을 반사해내던 물빛도 이젠 그 사나운 반짝거림을 깊은 수심( 水深)속에 잠재우고 쪽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런 풍경 속의 사람들도 눈이 맑아지고 귀가 순해지는 계절, 사람의 나이로 치면 9월은 50대 후반에세 60대 초반쯤의 연륜이다.

젊음도 아니고 늙음도 아닌 나이,

인생에 있어 나이란 게 무순 의미가 있으랴?만 살아온 세월만큼 외모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는 건 거부할 수가 없다.

열정 하나로 살아오면서 부질없는 공명심과 욕망에 얽매인 근심, 걱정, 조바심의 마음에도 이젠 저 9월의 자연을 닮은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깃들고 평화가 머물 수 있는 나이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의 시공간(時空間)

이다.

그 나이가 되도록 뜻한 바 대로 이룬 것 하나 없다해도 그리 불안하거나 초조해 지거나 아쉬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몸과 마음은 이미 9월의 넉넉함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땅 담요, 돌베게, 하늘 이불삼아 주유(周遊) 하며 바람으로 배 채우고 시냇물로 목 축이는 신선(神仙)놀음은 아니더라도 은은한 달빛 아래 나를 맞겨 몸을 씻고 마음을 휑궈내며 티끌 한톨 머금지 않은 송하풍( 松下風)으로 헝클어진 머릿결을 가지런히 빗질하는 그런 교만(?)정도야 부려봄직 한 9.

10월이 추수를 통해 실질적인 소득을 맛볼 수 있는 계절이라면 9월은 목전에 다가온 10월의 그 소득을 꿈꾸며 그렇게 눈이 풍요롭고, 마음이 넉넉하고, 평화가 머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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