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 칠산문학회장 / 영광신문 편집위원

"향교 뒷 산 초록의 풀밭에 새하얀 빨래가 널리면 봄인줄 알았고, 성산 저 너머로 까만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면 가을을 느꼈지. 눈 내리는 겨울 날 염산 향화도에서 나오는 빙어 ( 氷魚)를 참기름에 무처먹으면 쌉쓰름 하면서도 고소한 뒷맛이 입 안 가득 감도는데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90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노구를 이끌고 영광(고향)을 찾았던 고 의당(嶷堂)김용범 화백께서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말씀이다. 인생 말년에 무순 미련이 남아서 그리도 애타게 고향을 그리워 했을까? 죽어서 고향땅 영광에 묻히는 게 당신의 마지막 소망이라고 하셨었다.

우리 인간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이고 가치일까?

11월도 끝나가는 어느날 저녁무렵 여상(如常) 서민영 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구현아 여기 자사원(姉史園:김옥자) 댁인데 신문사 박대표(영광신문 대표:박용구) 지산(志山:조경길 자이(自以:박용국) 등과 모여서 이야기 나누며 니 생각 나서 전화 했다. 그리고 의당 선생께서 자사원 누님께 남겨주신 산수화를 신문사에 기증하기로 했다.

의당 선생님에 대한 회고의 자리이기도 한데 너도 같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구나."

조락의 계절은 인생의 노년기를 환기시킴으로써 인생의 덧없음을 더욱 뼛속까지 느끼게 하는가보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모두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가? 그 것은 기적 같이 와서, 한 순간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곧 사라진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모두 슬픔을 남기고, 행복한 것은 모두 아쉬움을 남긴다." 김진섭 수필 "백설부"의 한 귀절 처럼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의당 선생님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은 그렇듯 아쉬움이고 오래 남는 슬픔인가보다.

의당 선생님이 내려오시는 날이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날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가 저절로 만들어졌다. 앞서 밝힌 분들을 포함 해서 이미 고인이 되신 서단 님과 정설영 시인까지...그렇게 만난 자리는 의례껏 고인들께서 경험하신 영광의 근.헌대사 이야기와 인생 경험담을 듣는 시간으로 우리는 밤 새는 줄 몰랐었다. 뿐만 아니라 영광에 살고 있는 후배들은 노화백의 고향방문이 불편하지 않토록 그다지 녹록치 않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지극정성으로 받 들었다. 물론 아무런 댓가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단순히 태어나서 태를 묻고 자란 곳, 그 것만이 고향의 전부는 아닌 것 같 다. 특별하거나 꾸며서 정의될 의미부여도 아니다.

지난 날의 기억이 되어주고, 흔적이 되어주고, 역사가 되어주고, 이야기가 되어주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쉽께 끊어버릴 수 없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되어주는 것. 그저 숨 쉬고 느낄 수 있는 것, 편안한 것, 멀리 있어서 그리운 것, 빈 손으로 찾아가도 배고프지 않을 수 있는 곳, 화구 하나만 챙겨가면 편안하게 매화를 그리고 산천을 원색으로 화폭에 담아낼 수 있는 곳, 때로는 사소한 것으로 인한 투정도 들을 수 있는 곳, 그 것이 고향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고향 사람들이다. 바람 타고 날아가버린 그 옛날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곳. 영혼의 샘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곳. 비록 이름없고 희미했던 존재였지만 사람은 가고 없어도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고, 여기저기 추억의 그림자로 깃들어지는 곳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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