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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강구현/ 시인
2018년 09월 03일 (월) 10:54:55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그리 멀지않은 곳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또한 너무 먼 곳이 아니기에 아무 때나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그런저런 핑계로 알뜰히 안부전화 한 번 주고받지 못한 채 반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삼양사 염전을 다녀오는길에 일부러 해안도로쪽을 선택했다.

동호해수욕장부터 시작된 길은 아직 늦게 핀 해당화가 빨갛게 영글어가고 있는 열매와 함께 흘러가버린 세월 속 뒷 이야기들을 간직한 채 그 수줍고 선한 색조를 머금고 있다.

구시포 지나 영광 대교를 건너고, 다시 백수 해안도로를 몇 구비 돌고 돌아 고두섬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 금강산 가는 길''.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며 주인을 불렀다.

''영덕 형''

''워마, 어쩐 일이여?, 뭔 바람이 불었다냐?''

서로가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그 집 안주인이 타주는 커피 한 잔 나누는 시간.

''이제 내 나이도 내년이 환갑인디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 바다일도 접어야겠네''

''그럼 뭐하려고? 아직 건강한데 조금 더 일을 해도 괞찬겠구만ㆍㆍㆍ''

''아니야, 40년 넘게 저 바다를 괴롭혔으면 되었어, 그래도 날마다 바다로 출근은 할 생각이네.''

''뭐하러,''

''그동안 나를 먹여주고, 키워주고, 내 삶의 밑거름이 되어준 저 바다인데 이제는 그 은혜를 갚아야지.''

''어떻게?''

''조그만 바지선(뗏목)을 하나 지어서 선외기 엔진을 달고 고두섬 주변 해안선을 오가며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를 주워서 모아두면 행정에서 잘 처분할 수 있을 것이네,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날마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저 바다에 대한 나의 도리일 듯 싶네''

말을 마친 후 잔잔 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얼굴엔 이내 평화가 깃든다.

연륜인 냥 눈가에 새겨진 잔주름 몇개가 마치 해안가 절벽에서 피어난 해국(海菊)의 꽃잎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다.

저 바다에 떠다니거나 바닷가로 밀려든 온갖 쓰레기들이 해국의 그 연보라빛 꽃송이로 변해서 고두섬 주변의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고기들의 놀이터가 되고, 물새들의 꽃방석을 이룬 듯 한 환영(幻影)이 잠시 나의 눈 앞에 펼쳐진다.

60년 세월동안, 태를 묻은 고향에서만 살다보니 그동안 맻어온 인간관계나 자연스럽게 구축 된 삶의 기반이 있는 상황이기에 세상의 흐름속에 섞여서 한 자리나마 꿰차고 ''지역발전이니 사회정의의 추구니'' 하는 등등의 그럴싸 한 명분을 내세워 나의 존재를 과시하며 살아가기에 딱 좋은 나이 60세다.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의 권고로부터 그런 유혹에 휘말리기가 더 좋은 그런 나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삶을 저 바다에 내어놓겠다는 마음이라니ㆍㆍㆍ

그 것은 어쩌면 나머지 삶이나마 가장 ''''답게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요 신념인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의 일반적 분위기나 전체주의적 가치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철학과 나의 신념을 바탕으로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런 삶이야말로 가장 주쳬적인 삶의 모습이며 자신에 대한 신뢰이고 사랑이다.

자신에 대한 그 신뢰나 사랑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를 믿고 사람함으로써 비로소 타인도 믿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이타(利他)의 근간이 된다.

그 주체적인 개인의 가치들이 모여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그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고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건강한 사회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타적 희생과 봉사가 아닌 시대적 흐름과 분위기에 휩쓸린 채 정의와 진실을 부르짖고 있다. 그 것은 곧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기에 결국은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다. 개인의 사상과 주체적 철학이 정립되지 않은 채 경도된 전체주의의 이념에 휩쓸려 일방통행을 요구하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에 얽메여 있다. 특히 정치논리가 그렇다. 그래서 근본적 혁신이나 변혁이 쉽게 완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의 창가에 앉아서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을 올려다보며 오늘도 끝없는 자아혁명을 고심하고 있을 영덕형의 모습이 눈 앞에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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