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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길 ㅡ고향 산천을 다시 보다ㅡ
강구현/ 시인, 영광신문 편집위원
2018년 11월 05일 (월) 10:46:29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고향에 살면서도 늘 고향이 그리운 마음이었다.

아마도 잃어버린 고향이 아니라 흘러가버린 옛날이 그리운 것이리라.

현실성이 전혀 없는 그런 마음은 봄부터 가을까지 틈만 나면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게 했다.

호구(糊口)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취미생활도 아니었다. ''기다림의 미학''이니,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느니 따위의 나름, 그 어떤 알량한 가치를 부여했지만, 실상은 그도 아니었다. 세상의 흐름과 세태에 쉽게 동조하지 못하는 필자로선 가장 편안한 공간이 바다였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세월을 낭비할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로써 바다였으며, 그런 수단으로써 바다낚시를 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여러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고 자란 곳이 바닷가였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 그 바닷가이며, 바다의 생태가 이미 몸과 마음에 배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조그만 배까지 어찌어찌 해서 한 척 갖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으랴?

올해도 가을이 저물어가는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낚시를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이 앞서 출항을 할 요량으로 아침은 먹는둥 마는둥 하고 서둘러 뱃머리(선창)에 갔다. 집에 있을 때는 바람이 없는 둣 했는데 바닷가에 나와보니 제법 세차게 불어온다. 출조 하기엔 그다지 좋은 날씨가 아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오빠, 오늘 시간 있으셔요?''

''?''

''시간 되시면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 하시게요.''

출조를 포기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영광을 나갔다.

두 명의 여제(女弟)들과 불갑사 입구 음식점에서 닭백숙에 동동주 한 잔 곁들인 점심이 따뜻했다.

벌써 가지를 떠나 소슬바람에 휩쓸리는 낙엽들이 계절를 실감케 한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우리 드라이브나 하자.''

''그럽시다.''

불갑사를 떠나 우리 일행은 군남면 남창리에서 염산면 오동리로 넘어가는 임도(林道)로 들어섰다.

구비구비 휘어진 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해 갈수록 가을빛이 완연해진다. 아직 차마 떨구어버리지 못 한 채 그 고즈넉하고 파리한 꽃송이를 몇 송이 달고 있는 구절초, 이미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는 싸리나무, 눈부신 햇살 아래 은백으로 나부끼며 쉼없는 손짓을 보내오는 어욱새, 차가 지나는 앞길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는 다람쥐, 동면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길인지? 마른 풀섶을 파고드는 까치독사,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애기단풍과 소나무 그늘 사이에서 익어가는 산감, 그리고 처음 와보는 길이라 감탄사를 연발하며 휘둥글해진 아우들의 두 눈동자ㆍㆍㆍ

''오빠, 우린 맨날 소문 난 곳만 다녔는데 그보다 더 좋은 이런 곳이 우리 영광에도 있었네요. 너무 좋아요.''

정상이 아직 저만치 남아있는 중턱의 고갯마루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를 헤쳐온 바람을 쉼호흡 하니 정신이 맑아진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내맡겨 긴 머리결을 빗질 하며 시진 찍기에 분주한 두 아우의 모습도 어떤 나무이거나, 이름 모를 풀이거나, 가을 느즈막이 피어나는 들꽃인 냥 이미 산의 일부로 동화 되어버린 모습 그대로다.

다시 차를 타고 정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서서히 올라간다.

잠시 쉬었던 그 곳에서 군남 용암리로 넘어가는 길이 새로 나 있었다. 군데 군데 정자와 벤취가 설치해져 있고, 가파른 길은 시멘트로 포장해서 길이 폭우에 훼손되지 않도록 제법 세심하게 만들어진 길이었다.

그렇게 몇 구비를 돌아서 월암산의 정상이 손에 잡힐 듯 한 또 하나의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정상에 가리워진 남동 방향을 제외하고 모든 풍경들이 탁 트인 채 시계(視界) 안으로 들어온다.

필자의 입에서도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우리가 출발 했던 영광읍 시가지 일부가 보이고, 물무산에 선명하게 드리워진 용바위도 보이고, 점심을 먹었던 불갑사도 보이고, 아스라이 칠산바다와 그 위에 가물가물 송이도, 낙월도, 노인도, 납덕도, 칠산도 ...등과 더불어 위도까지도 보이고, 내가 태어나 유년을 뛰놀던 가음산도 보이고, 백수 하사리 들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도 보이고, 발 아래로는 산자락의 품에 안겨 옹기종기 다정한 용암리의 마을들이 보이고, 함평만의 푸른 물결과 용암저수지의 청람 빛이 눈이 시리도록 곱기만 하고, 하늘은 또 구름 몇 조각 띄워 어디론가 흘러가고...

고향에 살면서도 늘 그리워했던 고향 산천이 오늘 이 고갯마루에서 뚜렷하고 선명한 가을빛으로 되살아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벗은 안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배경은 달라도 지용 시인의 고향이나 오늘 우리들의 고향은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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