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한국군 증오비

아가야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다 쏘아 죽였단다.-”

요즈음 한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 베트남의 유명관광지인 다낭과 퀴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꽝응아이성() 지역의 주민들이 아기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라고 한다.

베트남 파병 한국군에 맺혀있는 원망은 자장가뿐만이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에 의해 마을주민 전체가 희생을 당했던 빈호아 마을 등에는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구호가 적힌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612,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가 빈호아 마을을 점령하면서 430여명의 마을 주민을 몰살시킨 사건이 있었다.

이 학살의 희생자는 대부분이 여성과 노인, 그리고 어린 아이었는데 이 중에는 21명의 임산부가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마을을 점령한 해병대는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수 백 마리의 가축과 사람들을 한 구덩이에 몰아넣은 후 총을 쏘아 몰살하였다는 것이다.

빈호아 마을뿐만이 아니다.

고자이와 쯔엉탄 마을 등 휴전선 인근의 격전지 마을 입구에는 여러 개의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물론 당시로써는 피할 수 없었던 전쟁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베트남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들에게 저지른 만행과 교차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사과를 하고 현지에 진출한 기업이나 민간단체에서도 마을주민들을 위로하고 사죄하는 뜻으로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뼈아픈 생체기를 한방에 치유해 버린 통쾌한 매직맨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베트남 축구감독 박항서일 것이다.

박항서 매직이 만든 코리안 신드롬

박항서 베트남 축구감독이 베트남 내에서 코리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종 SNS는 박감독의 인기가 베트남에 한류 열풍을 몰고 왔다는 아이돌그룹도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고 전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우리 국민이 모두 붉은 악마가 되어 네덜란드 출신 히딩크 감독에게 보내주었던 환호와 열광보다도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 박항서 감독이 이끌고 있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10년 만에 아세안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에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오토바이의 경적을 울리며 열광을 했고 박항서감독의 초상화와 태극기를 흔들며 코리아를 연호하기도 했다.

게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박항서 감독이 자신의 비즈니스석을 부상 선수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이코노믹석을 타고 왔다는 유명한 일화까지 전해지면서 그는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일약 베트남 축국역사를 새로 쓰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이며 서민적인 그의 행보와 뛰어난 리더십은 베트남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으며 한, 베트남 양국간에 그 누구도 풀기 어려웠던 과거의 악연을 걷어내고 국제사회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항서감독은 베트남인들을 폭탄구덩이가 아닌 환호와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면서 씻을 수 없었던 아픈 상처까지 치유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 때는 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사생결단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박항서감독의 매직은 그 아픈 과거를 덮어가며 오히려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박항서 감독 한 사람의 역량과 열정이, 한국군의 만행을 결코 잊지 않고 만대까지 기억하리라던 베트남인들의 분노까지도 잠재울 수 있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황금복돼지해 건강과 행복을

황금복돼지해라는 기해년(己亥年) 새해에는 박항서감독의 매직처럼 모든 군민들이 소망을 이루는 넉넉한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영광신문 애독자들께도 건강하고 행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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