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진/ 향리학회 회원

멀리 위도까지 공연 길에 나섰던 법성포 청년들

‘BSB’?, '법성악단(Beob Seong Band)'의 영문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우리고장의 고을사에 따르면, ‘BSB'의 연원이 지금부터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8년에 창립한 '법성포청년회'는 산하에 문예부, 음악부, 운동부를 두고 신문화보급과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법성포 최초로 진내리 232번지 일원에 자리했던 '청년회관'에서 동갑나이 두 청년, 남궁현(1901년생)과 신명희(1901년생)의 지도로 악단이 결성된다. 구성 악기는 트롬본, 트럼펫, 클라리넷, 큰북이었고, 안형백(1903년생), 안관백, 배상길(1904년생), 최재춘, 나환문(1910년생) 등이 주축을 이뤄 청년회관과 남궁현의 사랑방에서 연극도 꾸려 연일 연습하였다. 그리고 고을사람들을 즐겁게 하였고, 멀리 위도 등지까지 소위 지방공연까지 하였다. 더불어 여러 행사에 참석하여 흥을 돋우었다. 특히 매년 거행되었던 인의산 기슭에 자리했던 초등학생들의 운동회 때는 운동장 서쪽 모퉁이에 높은 다락을 만들고 거기에 올라 앉아 나팔을 불어대면서 신나게 연주했었다고 한다. 1937년에 이르러 이 취주악단은 초창기 단원들보다 18~20년 후배들로 구성원이 바뀐다. 단장은 신석범이, 트럼펫 윤필중, 코넷 정중석, 바리톤 김석호, 트롬본 박진수, 북 홍성부, 클라리넷 이동오 등이 맡아 매일 저녁 법성리 '해안통'에 자리했던 '해월루' 앞에 모여 연습하였으며, 이 들은 1940년대에 법성포초등학교 강당에서 연주발표회도 가졌다. 이때 지휘는 목포상업학교 재학생인 신용재(박경원 전 내무장관과 동문)가 맡았었다 고 한다. 이렇게 일제강점기에 이 고장에는 웬만한 도회지에서도 보기드믄 악단이 결성되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특히 '기타'목포의 눈물이 한창 유행할 때인 1935년경에 진내리 김석두가 처음으로 들여왔고, 연동거리 권영환(별호:늬눈백이)이 잘 쳤는데, 아이들이 이 곡의 전주에 가사를 붙여 오줌 누러 갔다, 똥누러갔다, 똥통에 빠져서 ... ”하고 입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곤 하였다는데, 이때부터 기타를 치는 청년들이 늘어났고, 오채영 형제가 특히 잘 쳐 기타의 달인으로 전래되고 있다.

통기타로 맥을 이은 법성악단, BSB

8.15 광복이 되자 이 악단은 앞 단원들 보다 조금 더 젊은 청년들이 이어 받았다. 그리고 명칭은 '신성악극단'으로 개칭하였는데, 대한청년단원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한청악단'이라 하였다. ‘한청악단은 김철현이 단장을 맡고, 클라리넷 나환일, 바이올린 신만엽, 기타 등등의 악기는 유재봉, 나세일, 이지영 등이 맡아 연주하였는데, 가야금과 양악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기 도 하였다. 이 때 가야금은 유재봉이 맡았다. 한청악단은 연극까지 하였는데, 영광군내는 물론 다른 군 지역에서까지 초청되어 순회공연을 하였다. 이 들이 위아래 하얀색 단복에 검정색 나비넥타이, 파란 조끼를 입고, ‘고향의 봄 등을 연주할 때면 청중들로부터 열띤 갈채를 받곤 하였다. ’한청악단은 한국전쟁(6.25) 이후에 그 명칭이 '법성악단(BSB)'으로 바뀐다. 이 악단의 단장 겸 사회는 나환일이 맡았고, 트럼펫 김미인, 트롬본 이기철, 바리톤 이경환, 색스폰 이정식, 기타 오채영, 바이올린 신만엽, 북은 이순재가 맡아 연주하였다. ‘법성악단1960년대까지 그 맥을 이어가며 콩쿨대회와 연극 등의 반주도 하였다. 그러나 1970년에 이르러 농어촌인구의 도시이주현상이 가속되자 단원들도 하나 둘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면서 시들해 졌는데, 그 빈자리를 2십대 전후의 박종식, 종기(천일주유소 대표) 형제가 통기타 연주로 어른들의 사랑을 통째로 받으며, 그 싹을 키웠다. 지난 22, 오후 6시에 법성포 뉴타운에 있는 한 카페에서 법성통기타동아리, 메아리가 법성면장(이효순) 등 고을 주민들이 홀을 가득 메운 가운데 2018년 송년 통기타 연주회를 하였다. 관에 손 벌리는 세태에 이렇게 탄탄히 자생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수준 높은 연주회를 선보이기 위해 회원 모두가 취미를 넘어 각고의 노력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지나간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법이라는데, 우리고장 고을사의 한 단원을 이루고 있는 이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손뼉 치며, 통기타와, 포크 송, 청바지로 대표되는 70년대로 되돌아가 보니 나 또한 모두 다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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