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시인

'2018년을 빛낸 의인' 6명과 함께 해맞이를 하는 것으로 청와대는 첫 일정을 시작했다. 대통령과 기해년 시작을 하게 된 사람들의 활약상은 실로 대단하다. 서울 봉천동 원룸 화재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대학생을 구하고 논으로 추락한 승용차에서 불이 난 것을 알고도 운전자를 구조했고 총기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제압하여 다른 인명 피해까지 막았다. 그 후 LG복지재단으로부터 받은 상금 3천 만 원 전액은 현장에서 순직한 공무원의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6명 각각의 이타적인 행위는 사회에 모범이 되어의인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도움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서 주저함 없이 남을 돕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박수를 받아서 기쁘다. 그런데 지난 명절 설날연휴에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난 이가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51)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다. 설 연휴 근무 중 돌연 사망했다.

26일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6시쯤 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 사무실에서 심 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설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지만 연휴가 시작된 주말 내내 연락이 닿지 않자 병원을 찾았고 부인과 직원들이 센터장실에 쓰러져 있는 고인을 발견했다. 평상시에도 응급상황이 생기면 연락이 되지 않는 채 귀가하지 않는 경우가 잦아 연락이 두절 되도 업무로 바쁘다고 여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만끽하는 시간이지만 응급의료센터 연휴는 응급대란을 맞게 된다고 한다. 그 한가운데서 전쟁을 치루고 의연히 순직을 한 듯하다. 모두 떠난 사무실 의자에 걸터앉은 채였다고 하니, 외롭게 삶을 마감한 윤센터장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가슴 미어진다. 한 단체의 책임자로서 너무도 성실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는 인턴처럼 24시간 온콜(on-call, 대기중)이 되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엊그제 높은 시청률로 장안에 화제가 된 드라마가 있었다. 의대에 가기 위해 부모와 학생들의 노력이 그려진 내용 이었다. 의대를 가기위한 노력은 사회 계급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표현했다. 의사가 되면 경제적인 부와 안정감을 얻는다는 면이 부각되었다. 그런 여운이 아직도 생생한데 의사가 환자를 보느라 제대로 휴가도 갖지 못해 죽음에 까지 이르렀다는 건 충격이다. 해마다 배출되는 의사는 3000여명이 훨씬 넘는다. 그중 극소수만이 응급의료 계통에 뛰어 든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힘들게 마친 의대생들에게 어떤 전공도 강요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응급의료센터는 의사들이 잘 가지 않으려는 분야다. 외래 의사는 환자가 예약이 되고 하루에 많은 숫자의 환자를 볼 수 있지만 응급 의사는 밤을 세워가며 일을 해도 한두 명을 볼까 말까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기피 대상일 수 있을 것이다.

윤센터장은 전공의 수련과정이 시작된 응급의학과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전문의가 된 뒤 통상적인 임상의사의 길을 갔다면 자신이 취직한 병원의 응급실만 지키면 되었을 것이다. 출세와 안정과는 무관한 채 응급의료센터만을 보고 살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센터에는 응급의료팀과 외상센터 팀 등 8개 팀에 161명의 직원이 있다. 전국402개 응급 의료기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잘하면 일상적인 업무 수행이고 잘못되면 모든 비난이 쏟아지는 자리를 그는 지난 10여 년 간을 지켜왔다. 전남의대 졸업 이후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 당시 응급의료기획팀장으로 합류해 밤낮없이 환자를 돌봐왔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 집으로 퇴근을 해서 일과 삶의 발란스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격무에 지친 그는 여러 차례 사의를 표했지만 윤센터장을 대체할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윤센터장을 행정가라고도 소개한 걸보면 그가 1년이 멀다하고 바뀌는 보건복지부의 담당이나 국립의료원장이나 국회의 목소리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정책적 변화에서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공무원들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인사이동을 하는데 오히려 외길을 걸러온 전문가는 온갖 무거운 책임을 졌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응급의료 전용 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하고 400여개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응급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체계인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도 구축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길을 가는 것, 그러면서 직접 실천하는 길을 가신 윤센터장님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에 마음을 전해 본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에게 어떠한 일이 올바르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신을 갖고 대의적인 삶을 실천하며 사는 건 영원히 기억 된다. 올해 22주년이 된 영광신문의 창간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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