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영광신문 편집위원, 시인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 된 초기, 포은(包銀) 정몽주, 목은(牧隱) 이 색과 함께 여말 성리학의 대가이자 충신으로 추앙 받았으며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졌던 야은(冶隱) 길재가, 멸망해버린 고려의 옛 도읍지인 개성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감회를 노래한 회고가(懷古歌)의 대표작으로써 망국의 한과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 있다.

고려 왕조의 융성했던 옛 시절이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아도, 유구한 자연과 옛 조국산천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인간사의 무상함을 더해준다.

()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34(755) 11, 황제 주변의 간신배들을 토벌한다는 명분(청군측(淸君側), 왕의 주변을 깨끗이 함)으로 안녹산이 난을 일으킨 전란 때문에 한 때 아시아 각국은 물론 멀리 페르시아, 사라센 등지에서 온 외교 사절과 상인들로 북적대며 화려하고 웅장했던 수도 장안이 폐허로 변해 버리자 그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두보가 읊은 시 (춘망)도 길재의 시와 그 내용이 흡사하다.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나라는 깨졌어도 산하는 남아 있어)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다)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때를 느꼈는지 꽃도 눈물을 뿌리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이별이 서러운지 새도 놀란 듯 운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봉홧불 석 달 동안 연이어지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집안의 편지는 만금에 해당해)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흰머리 긁어 대 더욱 짧아지니)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아예 비녀조차 이기지 못하는구나)

 

먼 후대의 시인 이은상이 쓴 시에 드리워 진 인생사의 허무함은 위의 두 작품보다 더 깊고 쓸쓸하면서도 단순히 그 허무함에 그치지 않고 시대의 인간 군상들에 대한 조롱까지 깃들어져 있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료/

지팡이 도로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 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하는 구료

 

그 엣날 그 동산에 서 있던 그 큰 소나무(큰 인물, 훌륭한 지도자)는 간신 모리배들에 의해 죽임 당하고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어느 해 풍우(폭동, 반란, 쿠테타ㆍㆍㆍ)에 의해 그 동산(평화로왔던 시절, 온전한 세상)은 사태져 무너지고, 그 진흙탕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새솔(졸부)들이 서로 잘났다고 아귀다툼을 하며 도토리 키재기 하듯 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산천은 의구하다''거나,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있다''는 옛 시인의 말도 모두가 허사롭기 짝이 없다.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각 조합장 동시 선거를 한달 여 남겨 둔 지난 219일엔 우수라는 절기에 걸맞게 봄비가 흠뿍 내렸다.

그 비를 자양분으로 삼아 들논의 보리는 부쩍 자라서 그 푸르름을 더 해 갈 것이고, 흙 속의 씨앗들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새 싹으로 돋아날 것이며, 마른 나뭇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봄눈을 틔울 것이다.

그렇게 찾아올 봄의 향연 속에서 치러질 전국 조합장 동시 선거는 벌써부터 불법 타락선거로 인해 입지자가 구속되거나, 고소고발 되는 등 어수선 하기만 하다.

기왕지사 입지를 밝혔으면 건전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정의로운 경쟁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승자나 패자 모두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지역민들간의 지역주의, 분파주의 등 갈등구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저마다의 후보들이 역량을 발휘하여 선거판을 봄의 향연장으로 연출하는 3월이 되면 좋겠다.

각 후보들이 그런 상황을 연출해내지 못한다면 천상 도토리 키재기 하는 모습일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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