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진/ 사회복지법인 난원 영광노인복지센터장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 인간들이 성읍과 탑을 건설해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코자 하였다. 신이 성읍과 탑을 보고 하나의 언어를 쓰고 한 족속이 하는 일을 막고자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고 그들이 온 지면에 흩어지면서 그 도시 건설이 중단되었다는 내용이다.

다시는 대홍수를 내리지 않고 땅에 번성케 하겠다는 신의 말을 불신했던 노아의 후손들. 이들에게 신이 내린 벌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해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했다. 언어가 다르면 소통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사이에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일까? 소통은 개인이나 조직에서 매우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문제 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만큼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인데 문제가 생겼을 때 환경이나 주변 사람들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 문제를 찾아라. 주변 사람이나 환경을 바꾸기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라는 힐러리 클린턴의 말처럼 변화의 열쇠는 나에게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나부터의 작은 변화로 시작되어 손쉽게 풀리기도 한다. 며칠 전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문제로 직원과 의견을 나누는데 서로의 말만 앞세우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우신가요?”라며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 상대방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내 눈높이로 상대방을 판단하기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것이기에 상대가 당연히 이해해 줄 것이라는 교만함을 버려야 한다. 소통은 양보, 내려놓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번은 직원이 전화통화를 마치고 한숨을 내쉬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들어주어야 한다. 자기 의견만 계속해서 주장하다보면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되므로 인내의 덕목이 마지막까지 필요하다. 노나라 임금이 바다새를 키우려고 집으로 데려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과 술을 주면서 극진히 대했으나 사흘 만에 그 새가 굶어 죽었다는 고사에서 보듯 내 마음이 순수하면 상대도 그럴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하다.

상대방과 말을 하다보면 내 말을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으나 과정이나 결과는 의도한 내용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디서 잘못 되었는가? ‘항상 보던 곳에서 보시게요!’, ‘결과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한말을 상대방이 정확히 이해했는지 반대로 상대가 한 말을 나는 정확히 들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명확한 의사전달도 소통에서 중요하다. 말하기 껄끄럽다고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이 정도까지 자세히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라며 내 입장에서만 생각지 말고 상대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공자 말씀에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나 조직에 속한 우리는 소통을 위해 유난이도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간담회, 티타임, SNS, 회의 등. 이러한 소통의 방법들은 인내와 양보, 역지사지, 명확한 의사전달 등이 전제가 된다. 이러한 노력으로 시작된 소통은 신뢰를 낳고 이런 믿음들이 쌓여 소통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물은 흘러야 아름답고 썩지 않으며 더 큰 바다를 이루듯 인간은 소통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며 소통은 개인과 사회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된다. ‘말하는 것의 두 배를 들으라고 우리는 두 개의 귀와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다에픽테토스의 말처럼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 소통이며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말의 의미를 확인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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