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尙有十二과 명량대첩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원균의 칠천량해전 대패 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이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선조의 명을 거부하며 올린 장계(狀啓)중 한 대목이다.

당시 조정은 칠천량에서 궤멸되다시피 한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편입하여 육전에 참여토록 했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바다를 포기하게 되면 곡창지대인 호남과 서남해안의 바닷길을 내어주게 되고 배를 통해 한양으로 직행할 왜군에게 군량과 병기보급선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조선이 누란의 위기에 빠질 것을 잘 알고 일이었기에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순신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암담했다.

133척의 함선과 22,000여명의 수병을 보유한 일본수군에 비해 고작 열두 척의 배와 120여명이 전부였던 조선수군은 수군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필사즉생(必死則生·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게 될 것이다)'의 각오를 외쳐보지만 중과부적이라는 말조차도 사치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은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파직을 각오하고 감히 선조에게 올린 장계는 중국 삼국시대 재갈량의 출사표를 넘어설 만큼 비장함이 배어있었다.

이순신은 바다에 능숙한 뱃사람들을 동원하여 뱃길을 이용한 전술전략을 짜는 한편 병선을 수리하고 수군을 보충하는 등 사전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나갔다.

천행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치밀한 계획과 전술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싸워 이긴 충무공의 위대함이 명량대첩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죽창과 개틀링 기관포

일본이 조선 정부를 장악한 후 군이 경복궁에 난입하고 남산에 대포를 설치하는 등 주권국가인 조선을 능멸하자 분노한 동학 농민군이 2차 봉기를 하여 우금치에서 대치를 하였다.

그러나 전투결과는 처참했다.

화승총 몇 자루와 죽창이 전부였던 동학군에 비해 중화기로 무장한 조선, 일본연합군의 무력은 애초부터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단순히 수적 우위만을 내세워 밀집 대형으로 돌격했던 동학 농민군을 향해 일본군의 개틀링 기관총과 크루프제 야포가 불을 뿜으면서 농민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우금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15,000여명의 농민군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설이 있고 보면 이는 전투라기보다는 차라리 학살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동학군은 저마다 노랑색 바탕에 궁을(弓乙)이라는 붉은 글씨를 쓴 절대불사(不死)의 부적을 등에 붙이고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는 미신같은 주문을 큰 소리로 합창하며 앞뒤를 재지 않고 돌격했다고 한다.

싸움의 승패는 패기와 결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전투였다.

No 저팬보다는 No 아베

명량해전과 우금치전투 사이에는 우국충정이라는 공통점과 전술전략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비록 두 전투사이에는 300년이라는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조국강토를 유린하는 일본에 비분강개하여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하나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결기로 맞선 것은 큰 공통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분기와 충정만을 앞세운 체 신식훈련과 현대식 무기로 중무장한 일본군을 파악하지 못한 체 무리하게 대항했던 우금치 전투에 비해 중과부적이라는 말도 안되는 병력과 장비()를 가지고도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통해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두었던 명량해전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지금 일본 아베수상이 자행하는 경제보복으로 인해 전국적인 반일 감정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아울러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결기와 죽창과 열두척의 배, 그리고 금모으기와 올림픽 보이콧까지 거론하는 정치인과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분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보다 우세한 수군을 가지고도 즉흥적이며 감정적 대응으로 대패를 했던 원균과 중과부적의 병력을 가지고도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순신의 치밀한 전술전략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국제적 지형적 특성 상 일본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지금 우리의 운동방향은 No저팬이 아니라 아베수상과 일본국민 사이를 갈라놓는 No아베여야 한다.

즉흥적인 감정대응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치밀한 대응전략을 세워 대처하는 것만이 승리할 수 있는 길임을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으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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