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 사진가 수필가

지난 3월 제주에서 삼나무숲 훼손으로 큰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비자림로 공사는 일단 중지가 되었다. 문제는 숲이 아니라 애기뿔 쇠똥구리와 팔색조 등의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해가 힘들었다. 숲의 훼손보다 멸종위기종의 보호가 우선이라는 논리인데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모임의 시각은 다른가보다. 물론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나무와 각종 식물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자연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숲은 더욱 크게 생태를 좌우한다. 당시 보도 사진을 보면 길가에 처참하게 잘려 늘어져 있던 비자나무들을 볼 수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며 굵어진 몸뚱이들이 토막으로 뒹구는 모습에 가슴이 아린 것은 나뿐일까.

가장 청정한 에너지를 꼽으라면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다. 친환경의 대명사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수적으로 따라 붙는 부작용이다. 실제 태양광 발전은 패널을 세우기 위해 상당 부문의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친환경을 빙자한 환경의 훼손인 셈이다. 심지어 산사태까지 유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풍력 역시 부작용은 있다. 산 구릉지나 바닷가에 주로 세어지는 풍력발전기는 멀리서 보면 목가적 풍경이지만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풍력기는 그야말로 괴물이다. 웅웅대는 소음은 물론 깜박이는 야간의 불빛은 사람의 접근을 거부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대가 된다는 뜻이다. 요즘 염산과 백수의 바닷가에 이쑤시개처럼 늘어선 풍력기는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쯤에서 환경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봐야 한다. 어떠한 유형의 친환경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가 말이다.

요즘 휴양림이 뜨고 있다. 이웃 장성은 일찍이 개인 선구자의 노력으로 편백나무 숲을 얻었다. 전국 최고 수준의 편백나무 휴양림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 이곳은 전국에서 몸을 쉬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 든다. 하지만 적절한 통제와 관리로 전혀 복잡하거나 시끄럽지 않다. 그야말로 한적하게 쉬어가는 휴양림이다. 나무의 위력을 이곳에서 크게 느낀다. 숲의 생태계를 조정하는 역할은 물론 인간에게 숨을 쉴 산소까지 공급하는 나무는 바로 지구의 생명이다. 그저 무위자연의 혜택만 누리는 인간은 고마움을 모르고 오늘도 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지난 8월 국립산림과학원은 의미 있는 실험을 했다. 서울의 중심에서 숲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미세먼지를 측정한 것인데 결과는 놀라웠다. 동대문의 홍릉숲과 시내를 비교해보니 온도부터 달랐다. 처량리역 부근이 35도인데 불과 2km 떨어진 홍릉숲은 31도로 4도 정도의 차이를 보였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최고 40%의 차이를 보였다. 나무의 위력이다. 사람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무의 천적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이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숲과 인근 시가지를 비교해보니 역시 미세먼지는 45%, 초미세먼지는 30% 정도 낮아졌다. 작은 수치가 아니다. 평균 미세먼지를 5% 낮추는데 드는 비용은 상상 이상이다. 전국의 디젤차 전체를 통제해도 얻지 못할 결과다. 답은 명백하다. 나무가 사람을 살린다. 개발을 명분 삼은 벌목은 후세가 용서하지 못할 범죄다.

나는 3년 전 묘량면 효동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 동네에 나무가 많고 장암산 밑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움막터로 자리를 잡은 곳은 수백 년 묶은 팽나무와 오동나무가 소로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자라 있었다. 하지만 막상 터를 닦는 중에 이중 6그루의 거목이 베어져 나갔다. 이유는 텃밭 농사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이웃집 은행나무가 사형을 당했다. 거목들이다. 은행이 떨어져 냄새가 난다는 이유다. 이곳에 들어와서 은행나무의 단풍에 취해 가장 먼저 내 카메라에 담겼던 은행나무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살아서는 숨을 주고 죽어서까지 가구와 편의시설을 위해 몸을 희생하는 나무의 현실이다. 숲길 조성은 수많은 나무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지고 행복숲은 나무들의 불행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하루에도 여의도 몇 배의 숲이 사라지는 지구에서 인간이 받을 후유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숨길을 막고 있다. 없어도 되는 시설을 위해 수백 년 묶은 나무를 베어 없애는 인간들의 만용을 자연은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지구에서 인간만 사라지면 지구의 멸망 같은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지구의 천적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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