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희/ 전 홍농농협 조합장

지난 1111일은 스물 네번째 맞은 농업인의 날이었다. 농업인의 날은 최초 강원도 원주에서 농촌계몽 운동을 하던 원흥기 선생1964년 처음 제안했다는 기록이다. 이후 정부 부처의 협의를 거쳐 19965‘1111이 농업인의 날로 공식 제정 되면서 지금껏 시행해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과 동시 시장 개방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한 농민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농업. 농촌 발전에 기여한 농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취지에서였다.

특히 11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한 이유는 사실 농민은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흙과 인연이 깊은 관계라고 할까? 그런데 한자로 흙토()는 십()과 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이에 착안해 자가 두 번 겹치는 1111일로 농업인의 날을 정한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농업인의 날 기념식은 자가 세번 겹치는 111111시에 시행해 오고 있다.

농업인의 날은 농민들에겐 참으로 잔칫날이나 다름없다.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즐겨운 날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을 맞이해서 농업계는 전국 곳곳에서 지역주민과 장만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아울러 농업, 농촌의 공익적 가치와 미래상을 진지하게 협의하고 공유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치룬다.

그런데 올해 농업인의 날은 가장 걱정스럽고 우울한 날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아물지 않는 태풍피해에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 발생까지 겹치면서 농민들의 시름과 우려가 사실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3개의 가을 태풍이 잇따라 우리나라를 강타하면서 과수나 채소류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무엇보다 세계 자유 무역협정에 의한 의무수입 물량은 차지하고라도 매년 과잉 생산으로 심각하게 걱정해 왔던 쌀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고들 한다.

특히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은 그동안 15건이 발생해 260여개 농장의 돼지 435천여 마리가 살처분 됐다. 그런데 야생 맷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는 실정이다. 애써 키우던 그 많은 돼지를 산채로 파묻어야하는 양돈농가들의 실망과 고통은 사실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또한 농업을 둘러싼 통상 환경도 갈수록 농민들을 옥죄고 있는 실정이다. WTO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우리 농업을 그나마 보호해 왔던 방패막을 스스로 던져 버린 것이다. 정부는 당장 어떤 피해도 없다고 하지만 농민들은 향후 진행될 농업협상의 결과에 따라 관세 및 보조금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어디 이것 뿐이랴! 작년 말안에 마무리 지었어야할 쌀 목표 가격을 결정하지도 않은채 변동 직불제를 없애겠다는 정부의 방침. 지금으로부터 20년전에 폐지했던 수세 부활방침. 40년이 넘게 시행해오던 농어가 목돈마련 저축 제도 폐지 등은 농어민들을 완전히 외면해 버린 것 같아 어쩌면 이들의 심각한 불만에 실망과 우려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당초 올해 농업인의 날 행사는 다양한 부대 행사와 함께 성대하게 개최될 예정이었다. 더욱이 농민뿐만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행사로 진행해서 모든 국민이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게 한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ASF 발생 등으로 행사는 각 지역 공히 쪼그라 들었고 조촐한 기념식 만으로 치뤄졌다. 농어업, 농어촌 특별 위원회가 준비한 문재인대통령의 농정비전 선포식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결국 많이 걱정스럽고 또 우울한 농업인의 날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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