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이 아무리 급할지라도 기본원칙 꼭 지켜야
먼저 이 글은 한빛원전민간환경안전감시위원회 공식 입장과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원전 가동으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문제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 추진 이후 원전과 핵무기개발로 엄청난 양의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물질이 발생하면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은 상용 원전으로부터 약 4만5,000톤과 국방용 사용후핵연료 2,000톤을 보관하게 되었다. 고준위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에 대해서는 지층처분이 안전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국제적인 여론으로 영구적인 지층처분을 위해서는 방사능이 환경에 위험을 주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오랫동안 생태계로부터 격리시킬 수 있는 지반을 선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일본과 같은 나라들이 사용후핵연료의 지층처분 프로그램을 갖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사용후핵연료나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운영 중인 곳은 아직 없다. 미국은 2002년 조지 W 부시 정부 때 라스베이거스 북서쪽 144km 떨어진 그레이트 베이슨 사막에 있는 유카산을 고준위폐기물 처리장 후보지로 선정했다.
1982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정 이후 20년만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백지화 된 상태이다. 이유는 지하수 오염과 화산 분출 가능성 논란과 주민 반발을 이유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반대하다 취임 이후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2015년부터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인 심층처분장을 건설하고 있다. 심층 처분장을 건설하려면 그에 앞서 안전을 입증하는 시설인 지하연구소(URL : Underground Research Lab)부터 건설해야 하는데 핀란드는 1970년대부터 처분과 관련한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URL로 안전성을 입증했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원전을 건설하였지만, 경제성장 우선정책으로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연구는 후순위로 밀려 외국에 비해 20년 정도 늦은 1997년에서야 연구를 시작했다. 그 이후 2013년 이명박 정부에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20개월간 공론을 거쳐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건설 필요성을 담은 권고안을 발표했다. 205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URL(지하연구소)를 2020년까지 부지를 선정하고 2030년부터 실증연구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국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보관시설의 포화정도를 감안하여 처분시설 마련 전 URL 부지에 사용후핵연료를 처분 전까지 보관할 수 있도록 하고 불가피한 경우 각 원전 부지 내에 단기저장시설을 설치하여 처분 전까지 보관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권고안을 토대로 박근혜 정부에서 2016년 7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까지 마련했지만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주 요인은 국민적 공론을 형성하지 못하였고 이미 건식저장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월성원전의 건식저장시설의 운영시한인 2041년에 맞춰 URL 인허가와 건설에 필요한 시간을 역산하여 2030년까지 마련한다는 원자력산업계의 의지만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또한, 원전소재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방사능의 위험성으로 기피시설일 수밖에 없는 URL과 영구처분시설 마련이 어렵게 될 경우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영구적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 정부 공론화 권고에 따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2016. 7)]
이후 문재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공론화를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2018년 5월부터 11월까지 원전산업계, 시민환경, 주민, 갈등관리 전문가 등이 참여한 재검토준비단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재검토준비단은 원자력계, 시민사회, 원전지역 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공론화 순서, 원전 내 임시보관의 공론화 범위, 공론화 위원회 구성방안 등을 합의하지 못하고 각 진영 간 의견 제시만으로 마무리 하고 말았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재검토위원회를 2019년 5월 구성하고 현재까지 운영 중에 있으나, 재검토위원회는 구성 단계부터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것에 대한 원전지역과 시민사회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재검토위원회는 운영시한인 2020년 5월 28일까지로 불과 3개월 남짓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전 국민 공론화는 정치적, 경제적 이슈에 밀려 토론회와 워크숍 개최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에 가장 민감한 원전 지역 역시 사용후핵연료 임시보관 포화가 임박한 월성원전 지역을 제외하고 구성과정에서 배제된 기장, 울진, 울주, 영광 등 4개 원전지역에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재검토위원회가 회의자료, 속기록 등은 제외하고 간략한 회의록만을 공개하는 폐쇄적 운영으로 공론화 분위기 조성에 실패했다고 주장하며 ‘주민 없는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공론화’, ‘가짜 공론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해체’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건설 중인 핀란드의 성공은 1970년대 후반부터 30년 넘게 공론화 과정을 거쳐 민주적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 밑바탕 되었다. 해외 각국 보다 늦은 공론화 착수, 지난 정부의 공론화 실패, 국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보관시설의 포화시기 등을 감안할 때 재검토위원회 입장에선 핀란드와 같은 30년 넘는 충분한 공론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 없듯 공론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국민적 관심과 동의가 없는 공론화 결과는 지난 정부와 세계 각국이 경험한 공론화 실패에서 볼 수 있듯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 정책이 고수되더라도 원전은 2080년까지 가동되고 그때까지 사용후핵연료는 계속 발생한다. 설령 현재 시점에서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현재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지역은 지난 2016년 11월 영광군의회, 영광군,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한빛원전 고준위 핵폐기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에 대한 원칙을 정한 바 있다. 원전 운영의 찬반을 떠나 우리지역에 일정기간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주민 간 갈등 없이 자주적으로 결정하자는 목적이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대한 우리지역 대책위원회가 의결한 원칙은 먼저 공론화 선행조건으로 사용후핵연료 실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 공개와 국민적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독성은 자연환경 상태의 우라늄 수준으로 감소하기까지는 약 30만년이 소요되며, 고방사능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최소 300년에서 1,000년까지의 관리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올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모두가 공감하는 공론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선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사전 학습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난 공론화에 대해 원전 소재 지역은 원전 내 임시보관의 영구시설화를 우려했다. 정부는 원전 내 임시보관 만료 시점과 처분시설 배제를 약속하고 국가 에너지 확보를 위한 원전 가동의 불가피성을 이유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공론화로 결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세 번째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해 원전 소재 지역 주민의 자율 의결권과 거부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수 국민에 의해 원전 소재 주민 희생이 강요되지 않는 환경에 대한 평등권 보장되어야 한다. 다음은 공론화 진행순서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크게 단기와 중장기 사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단기사항은 원전 내 임시저장 문제이고 중장기사항은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이다.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의 포화 해결을 위한 추가시설 확충의 시급성을 이유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고 임기응변식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중장기문제인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에 대한 사항을 결정하고 불가피한 경우 단기적으로 원전 내 임시보관 문제를 논의하는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
마지막은 공론화 지역별 의제 차별화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과 영구처분 등의 중장기 관리대책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론화가 시행되어 결정되어야 하고, 단기대책인 원전 내 임시저장에 대한 공론화는 원전 주변지역에 국한하여 시행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 다수 국민의 위험한 사용후핵연료가 본인의 거주 지역으로 오는 것에 거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소수인 원전 지역주민에게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원전 내 임시보관에 대한 문제는 해당 원전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의사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론화 의제에 따라 공론화 범위를 달리해야 한다. 2020년은 지난 정부 공론화에서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정도 등을 감안하여 지하연구소(URL) 부지선정을 목표한 해이다.
당시 공론화위원회는 경주시 월성원전은 2019년, 기장군 고리원전은 2028년, 영광 한빛원전은 2024년, 울진 한울원전은 2026년을 부지 내 임시보관 포화시점으로 예측했다. 이미 경주 월성원전은 포화시점을 경과하였지만 가동을 중지하는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데는 이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현재 재검토위원회의 운영에 대해 경주를 제외한 원전지역이 거부하고 시민환경단체가 반대하고 한편에서는 이번 재검토위원회가 모든 것을 다시 논의하기 보다는 전에 마련된 기본계획을 뼈대로 문제점만을 보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어느 주장이 합당한지를 판가름하기 어려우나 이미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없는 현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사용후핵연료 처분방식을 구체화하기까지 수 십 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하나 조급함으로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공론화 재검토가 되어 차기 정부에서 다시 백지화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늦었지만 재검토위원회는 지금부터라도 국민 다수가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에 대한 실체와 안전한 관리의 필요성 공감대를 우선 형성한 이후 원전 소재 지역주민의 권리와 주장을 보장하는 공론화를 추진해야한다.
[국내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현황] 2019년 4분기 기준
|
지역 |
발전소 |
임시저장방법 |
저장량 |
포화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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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
월성원전 2~4 |
습식보관 건식보관 |
108,636다발 321,960다발 |
2021.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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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
한빛원전 1~6 |
습식보관 |
6,436다발 |
2029. 4월 |
|
울진군 |
한울원전 1~6 신한울원전 1~2 |
습식보관 |
5,803다발 |
2030. 7월 |
|
기장군 |
고리원전 2~4 |
습식보관 |
4,629다발 |
2031. 2월 |
|
울주군 |
새울원전(신고리3~6) |
습식보관 |
100다발 |
2065. 8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