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목장 창고가 배드민턴 경기장으로 변신
“운동이 너무 좋아서” 직접 경기장 만든 목장주, 방역 소독은 당근
코로나19로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지인들과 배드민턴을 즐기기 위해 소독시설까지 갖추고 목장 창고에 배드민턴 경기장을 조성한 사연을 소개한다.
소똥 냄새 풍겨 오는 시골 목장 한쪽 커다란 창고는 저녁 7시가 되면 바빠진다. 낮에는 본업에 바쁜 회원들이 커다란 운동 가방을 짊어진 채 한 마음으로 창고에 모인다. 어딜 봐도 목장 창고인 이곳에 운동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게 됐을까?
군서면 만곡리에 위치한 젖소농장인 ‘평화목장’의 송영길 대표는 25년 가까이 운동을 해왔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19 사태가 수개월간 길어지자 매일 같이 방문하던 체육시설이 임시휴관에 들어가며 일상이 답답해졌다. 체육관에서 가벼운 운동을 즐기는 일조차 버거운 지경이 되자 갈수록 몸과 마음도 갑갑하고 무엇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운동이 절실해졌다. 결국 송 대표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지인들을 위해서 창고 하나를 비워 경기장을 만들었다.
창고 자리를 차지하던 농기계와 젖소에게 먹일 사료들을 치우고 직접 구매한 배드민턴 전용 매트를 깔았다. 처음엔 시멘트 바닥에 우레탄을 깔고 시작했는데, 움직임이 격해지다 보면 무릎에 무리가 가서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 전용 매트까지 설치했다. 저녁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운동시간에 맞게 조명도 준비했다. 목장 운영을 위해 입구에 설치해둔 자체 소독시설은 배드민턴 회원들에게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생활체육의 대표종목 중 하나인 배드민턴은 적당한 공간과 같이 운동할 짝이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다. “운동이 좋아서 모이는 모임이니까 그저 좋다”고 말하는 송 대표에겐 창고에서나마 같이 운동할 수 있는 순간들이 행복하다.
배드민턴을 위해 창고 경기장을 찾는 회원들은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창고에 단 한 코트만 있다 보니 많아야 10명이 모인다. 전부터 운동을 같이 하던 사람들이라 어디서 살고, 무슨 일 하는지 뻔하고(?) 움직임이 비슷비슷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안심하지 않고 농장 입구 소독과 발열체크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사고나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
한 경기에 15~20분, 4명씩 돌아가며 경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에 땀이 뚝뚝 흐른다.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보단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경기수도 부족하지만, 의외로 장점도 있다. 전에는 자기 경기하느라 바빴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 경기에도 집중하게 됐다. 오랫동안 셔틀콕을 주고받는 ‘랠리’가 길어지면 환호도 들려오고, 실수하면 서로 웃거나 응원해주니 운동할 맛이 난다. 잘하는 경기를 직접 보고 배우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도 생겨 전보다 사이가 더 가까워졌다.
창고 경기장은 체육관에 비하면 편의시설도 부족하고 종종 지푸라기가 쌓여서 손이 가기는 하지만, 회원들에겐 너무도 고마운 공간이다. 창고 경기장의 단골 회원인 표영주 씨는 “운동을 좋아해서 어디서든 해야지 갈증을 풀 수 있는데 이렇게 한 회원님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일상에 많은 변화가 있다. 면역력과 건강의 중요성이 높아졌지만 마음 놓고 운동할 곳이 사라졌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생활체육인들이 안심하고 운동할 날이 오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