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핼러윈(Halloween)데이가 이태원을 시끄럽게 달궜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밤에 유령이나 괴물 등의 가면과 분장을 하고 즐기는 미국 발 축제다. 이 날을 기념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시원을 찾아 올라가면 고대 켈트족의 축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 축제가 치러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 무렵이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기독교 축일인 만성절 전날이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을 위해 제를 올리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참고로 고대 켈트족은 일 년이 열 달로 이루어진 달력을 사용했다. 그래서 복장도 악령처럼 꾸민다. 원래 기독교와는 관계가 없지만 핼러윈의 어원은 만성절 전야제를 뜻하는 올 핼러우스 이브(All Hallows Eve)’의 줄임말이니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다. 부활절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기독교 문화에 스며들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렇게 본래 의미를 상실한 축제에 가장 잘 동화되는 민족이 우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지만 매월 특정일을 잡아서 만들어진 기념일은 핼러윈과 함께 깊은 상업주의의 구덩이로 빠졌다. 문제는 이러한 잡스런 기념일들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까지 무시하는 부류가 거리로 밀려 나오면서 벌어지는 불안과 고민이다.

현재 우리가 아프게 겪고 있는 질병의 근원들이 환경과 깊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원시사회에서의 집단을 이루지 않았던 삶에서 농경사회로 자리를 잡는 과정은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데에 뿌리를 제공했다고 보면 된다. 농경사회와 거의 동시에 시작한 가축의 사육은 인간에게 맛있는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는 대신 질병까지 선물했다. 현재 인간에게 발병하는 병의 근원 중 약 70%가 동물에게서 왔다는 주장은 통설이다. 세기를 휩쓸었던 바이러스와 전염병은 거의 동물성이었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동물과의 교감을 반려로 삼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만 천만을 넘는다는데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다시 재고해 봐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좁은 공간인 실내에서 동물과 같은 호흡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부담은 솔직히 두렵다. 물론 반려동물을 식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동물과의 가내 동거는 먼 옛날 농경사회의 시작으로 이루어졌고 작은 식량원이 되기도 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대량 식량원이 되었다. 가장 중심은 역시 소(). 지구에서 사육하는 소가 대충 10억 두라고 한다. 인구는 70억 정도이니 7사람에 한 마리다. 이들이 인간에게 내주는 우유와 고기는 중요한 식량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들에게서 먹을거리를 제공 받는 대신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른 가축은 제외하고 소가 만들어내는 환경가스만 해도 지구상의 온난화를 유발하는 가스의 17%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1명이 채식주의자로 돌아서면 한 해에 나무 15그루를 심는 효과를 낸다고도 한다. 지구 환경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하는 데에는 불과 30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 환경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이다. 그나마 지금 다잡지 않아서 유발되는 것이 30년 후이니 정확히는 현재인 셈이다. 남북극의 빙하가 녹기 시작하고 북극곰은 갈 곳이 없어 민가를 기웃거리기 시작한지 오래다. 먼 세월이 아니다. 바로 우리 후대의 자식들이 당할 재앙이다. 하지만 너무 태연하다.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환경 문제는 느긋하기만 하다. 특히 미국은 심각하다. 코로나19 대응을 봐도 선진국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비건이라는 단어가 뜨겁다. 환경과 직접 맞닿아 있는 말이다. 물론 전방에 내세우는 의미는 건강이다. 보통 채식주의자를 말하지만 모두 같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계란과 우유는 먹지만 이마저 제외시키는 진성 비건주의자가 요즘 대세다. 물론 채식이 육식보다 건강에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요즘 부쩍 늘어난 육식을 우리 체질이 급속히 따라가질 못하니 문제다. 방법은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려보자는 것이다. 환경도 살리고 건강도 살린다면 반드시 필요한 관심이다. 지구의 공멸을 막기 위한 최전방에 그레타 툰베리라는 스웨덴의 10대 소녀가 있다. 지구 위기는 기성세대가 아닌 10대에게 닥칠 일이지만 그들은 기성세대의 자식이요 손자다. 이들의 애타는 호소는 어른들의 현실적 욕심에 막혀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으니 안타깝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