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어김없이 다시 12월이다. 나이가 회갑을 넘으면 느끼는 감성이 다양해진다. 십진법을 바탕으로 사는 우리에겐 감성 역시 십 단위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세상을 보는 눈과 감성이 40대 다르고 50대 다르다. 주관적 느낌이 다름은 당연하지만 타인이 자신을 보는 느낌 역시 달라진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60세에 오는 것 같다. 70세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회갑을 기점으로 생각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능률적인 능력으로 일을 소화해 내던 나이가 은퇴의 나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사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은퇴가 없는 직업 역시 주위 친구들의 은퇴로 인해 같은 감성으로 빠져 든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슬프게 생각한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시선이다. 인간관계는 나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노인끼리라는 장막을 친다. 소통은 나이별로 불통이 되고 불통은 고집과 결합해 고집불통을 만든다. 이렇게 일터를 이루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멀어진다. 특히 관심의 소외는 심각하다. 심신은 아직 충분한데 사회의 중심까지 젊은이들에게 내주며 변방으로 물러서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특별한 병이 없다면 아직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계획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남은 시간이 아직 많은데 포기는 맞지 않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간일지도 모른다. 평생 자신을 위해 써보지 못했던 시간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볼 기회가 아닌가.

흔히 나이가 든다는 것을 퇴화로 인식한다. 일부는 맞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능력을 선천적이라고 하면 후천적으로 얻는 재능이 있다. 자신의 퇴화를 느끼고 감지하는 부분이 바로 선천성이다. 뇌세포는 줄고 전두엽은 둔해진다. 당연히 예기는 떨어지고 기억력 역시 감소한다. 이러한 현상을 자연이라고 생각하면 노화로 인한 퇴행성 단계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후천적으로 획득한 능력치는 이를 가볍게 해소한다. 또한 육신의 상처는 더디게 아물지만 정신의 상처는 오히려 빠르게 회복한다는 것이 뇌 과학의 증거로 나와 있다. 어쩌면 산전수전과 험한 인생전까지 모두 겪은 연륜에서 오는 이른바 인생내공(人生內攻)’의 결과일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확고한 목적지를 향해 진군한다. 다만 가는 길이 다르고 목적이 각각일 뿐이다. 혹자는 목적 없이 진군을 위한 진군만을 한다.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부를 향한 환상에 빠져 생각 없이 일만 하다가 죽는다는 데에 있다. 문제는 인생이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에 비중이 있음을 모르는 행위다. 결국 인간은 죽기 위해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적지에 죽음을 대비시키면 삶의 의미와 방향이 정해진다. 남은 시간을 일만하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돌아보고 사랑해줄 것인가. 줄어드는 삶의 날과 잠식해 가는 나이를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란 철저한 불확실성 속에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해 남은 시간의 실체는 없다. 그나마 확실한 현재 즉 지금을 즐기는 삶이 최선이다. 또한 젊은 세대와 자식들에 대한 기대는 금물이다. 기대만큼 실망한다. 국내 최고라고 자타 공인하는 모 대학에서 설문 조사를 했다고 한다. 질문은 자신의 부모가 몇 살에 죽으면 좋을까였다. 답은 충격적이게도 63세가 평균 나이로 나왔다고 한다. 부모의 장수는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뜻이다. 죽도록 고생하며 현재의 자신들을 만들어 놓은 세대에 대한 대우치고는 심하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아직 자신을 찾을 시간은 있다. 또한 나이가 든 만큼 과욕을 내려놓는 지혜도 배웠다. 이시형 박사는 그의 에세이 어른답게 삽시다에서 저지름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내가 환갑을 앞두고 혈혈단신 낯선 나라로 떠났던 것은 남보다 용감해서라기보다는 나의 상상을 늦게라도 실천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주저하는 순간 그건 진짜로 너무 늦은 것이 된다.”고 했다. 자신의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다. 인생의 즐거움은 스스로 찾아야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출발점을 잡아 소소한 행복을 찾아 남은 인생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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