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가장 불신을 받는 부류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언행불일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직업군은 역시 정치인이다. 정치를 하기 위해선 말 바꾸기가 필수 교양과목이다. 여기에 약간의 몰염치만 첨가하면 정치인으로선 상당한 소질을 갖추게 된다. 요즘 공수처 설치를 두고 벌이는 설전은 이러한 현상의 정점을 보여준다. 현재 야당은 공수처의 설치를 독재의 발판으로 몰면서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4년 전 현 제1야당 원내대표가 후보시절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검찰권이 비대한 곳은 없다. 그런 반면 검찰을 견제할 기구나 조직이 없다. 공수처 이야기가 수년 째 논의 되는데 이번 기회에 그런 것들이 정비되리라 본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안철수 대표 역시 대선 후보시절 고위 공직자의 부패수사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를 설치한다를 첫 번 째 공약으로 내세웠다. 유승민 당시 후보 역시 3년 전 대선후보시절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공수처 설치를 대표 공약으로 내 걸었다. 하지만 불과 3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그들의 발언은 모든 언론과 본인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의도적인 망각이거나 필요에 의한 기억의 상실인지도 모른다. 발언 당사자들 역시 자신들의 소신 발언을 까맣게 잊고 정 반대의 발언을 당치도 않은 이유를 내세워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결코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의 기억으로 정치를 한다면 나라가 위험하다. 국민이 선출한 국가의 수장이 타국의 수장과 맺은 국가 간의 약속도 사익 혹은 당익을 위해선 거침없이 공개하는 부류이니 현재의 상황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과거 소신발언 정도는 가볍게 잊을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유력 언론지와 방송이 아무리 덮어도 현대의 미디어는 가볍게 돌출해 낸다는 사실 또한 정치인 스스로 자각을 해야 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눈은 기성 미디어가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거미줄 같은 언로가 맡았다. 알림의 개념이 이미 오래 전에 지구를 자전하는 위성을 중심으로 천라지망이 되었음을 모르는 것인지 굳이 외면하는 것인지 또한 궁금하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말을 중시했다. 말은 본인의 인격이고 사상이었기에 가장 신중해야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뿌리 중에서도 혀뿌리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어려서부터 받았다. 우리 역사에서 실제 설화(舌禍)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정치인들의 막말 행동과는 사뭇 거리가 있지만 말은 그만큼 중요했다. 국회와 정치권에서 하루에도 몇 개씩 터져 나오는 막말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다. 어쩌면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과거 우리 조상들의 말에 대한 책임은 엄했다. 예를 들면 조선의 문신 대사헌 홍여방, 홍문관수찬을 지냈던 윤계선, 려말선초의 문신 김약항, 조선 전기 도관찰사를 지냈던 서선, 중국 당대의 시인이며 화가였던 고황, 려말선초의 문신 탁신, 고려시대의 문신 이혼 등이 자신의 말 혹은 타인의 말에 설화를 입고 유배 혹은 사사되었던 인물들이다. 그만큼 말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진다는 의미다. 만일 이러한 시대관을 현재에 도입한다면 살아남을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말이 행동을 앞서고 책임은 뒷전인 정치판에서 신뢰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우리의 삶에서 상대를 신뢰하고 마음을 트는 절대적 척도는 다름 아닌 이다. 말이 때론 글이 되고 행동이 되기도 하지만 그대로 드러나진 않는다. 언행은 항상 일치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명 조식 선생은 실천학문을 주장했다. 겉만 그럴듯한 말과 글 대신 행동을 강조했다. 글과 말로 배우고 행동에서 잊히는 학문의 부정이다. 그래서 그가 남긴 저술은 남명집(南冥集)은 단 두 권이지만 동 시대를 살았던 퇴계와 율곡은 풍성한 글 속에서 질긴 숨을 쉬고 있다. 그들을 현재까지 이어주고 있는 뒷심은 남인과 서인으로 대표되는 집단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흔적은 말을 대변하는 글로 남아 전하지만 내면을 향한 칼을 옆구리에 차고 말을 남기지 않은 가르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말을 내세운 행동은 수많은 불일치를 낳지만 말없는 행동은 불일치가 없다. 신뢰를 갉아먹는 말을 의식 없이 흘리고 오늘은 전혀 다른 말들을 내질러 놓는 정치권을 보면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만 이 시대의 설화(舌禍)는 죽었다. 그리고 말이 글이 되고 글이 행동이 되는 사람은 오래 전에 박제(剝製)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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