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여자나이 60이 넘어서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싱그러운 향기를 간직하고 한겨울 밤 소리없이 내리는 눈처럼 포근한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서남해 조그마한 섬마을의 딸로 태어나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시어머니가 되고 장모님이 되고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꿈 많았던 소녀시절 이후부터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억척의 삶을 살아온 세월, 그 세월은 길고도 지난한 것이었어도 그 지난함에 몸서리치지 않기에 그 세월이 키워낸 당신의 잔주름 속엔 그 세월만큼 깊고도 은은한 당신만의 향기가 배어있습니다.

그런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친가와 시댁을 오가며 딸노릇 며느리노릇 숙명처럼 허술하지 않았고 명절때면 지들끼리 모여앉아 밤새도록 술판 벌이는 아들 며느리 딸 사위들 이야기 속으로 슬며시 끼어들어 야, 느그들 술좀 적당히 마셔라"며 은근슬쩍 같이 어울릴줄 아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부녀회 불우이웃돕기 적십자회 독거노인 김장담가주기 ....

온갖 봉사활동에서도 특별한 의미나 어떤 가치에 얽메이지 않고 그저 하고싶은 일이기에 열심히 참여하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적당히 갖취진 경제적 안정에 만족하며 더 이상의 욕심에 집착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에 결코 나태하지 않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고무장화 고무장갑으로 무장하고 갯가로 나가서 꼬시래기 한소쿠리 뜯어다 나물 만들어 이사람 저사람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나누워주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내리던 눈이 그치고 햇빛 따뜻한 날은 아직도 일 속에 갇혀사는 동갑내기 친구를 불러내서 차에 태우고 정해둔 목적지도 없는 어느 곳으로 시원하게 달려가서 겨울바다 노을빛에 젖을 줄 아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산에 오르고 함부로 파헤치지 않은 약초뿌리로 정성 다해 담궈둔 술병 속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약초의 향기처럼 그렇게 익어가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때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찾아가서 간단한 점심 한끼에 소주 한잔 하면서도 구차한 신세한탄이나 넋두리도 없이 그저 편안하게 시간을 허비할줄 아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말로 하지 않고 티내지 않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저마다 속으로

"참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그렇게 느끼게 하는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그래서 어떤 정당성이나 가치조차도 필요없는 당신의 모습은 그래서 소리하지 않는 전사이며 그래서 외형으로 드러남 없는 혁명의 뿌리입니다.

세월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 그런 당신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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