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현대의 삶은 치열하다. 바라보는 대상은 거의 싸워야할 대상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이러한 현상에 익숙하게 자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운명처럼 주어진 제도적 아픔이다.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부여되는 치열한 경쟁은 이후의 삶에서 천천히 서바이벌 게임으로 돌아선다.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당사자에겐 벅찬 일이다. 이렇게 우리는 아이들을 키웠고 조금의 여유마저 박탈해버렸다. 남은 것은 친구를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함이다. 누구를 위한 절박함일까. 여기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자리할 뿐이다. 바로 자신의 만족을 위한 대리전쟁이다.

부모들이 모이면 가장 많이 다루는 대화의 소재는 자식 이야기다. 신기한 것은 하나같이 성공한 자녀들만 있다. 자녀의 흉을 보는 내용인데 해석은 결국 자랑으로 귀결된다. 어쩌면 모든 부모의 한결 같은 마음이겠지만 성공한 자식을 향한 치열한 투쟁은 영원히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현대인은 마음의 작은 여유마저 스스로 팽개치고 있다. 과연 성공이란 어떠한 삶을 칭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전직 대통령 혹은 국내 최고의 재벌들은 하나같이 감옥으로 향하고 있다. 권력과 부는 결코 성공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물론 MB처럼 자유보다는 돈을 중요시하는 특이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인 행복론에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권력의 취득은 곧 목숨이나 자유의 상실로 가는 필수 코스였다. 부와 명예는 성공이라는 단어와 니콜의 등식을 만들 수 없다. 현대의 치열한 삶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대상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신을 상실한 혹은 참된 나를 발견하지 못한 자의 부류가 추구하는 성공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대의 특혜인 자유의지를 반납해야 얻을 수 있는 대상이다. 부로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자유는 없다. 부를 축적하는 데 쓰는 노력과 쌓은 부를 지키는 데 쓰는 노력의 불쏘시개는 바로 자유라는 이름의 심적 여유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쟁취의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란 없다. 시험으로 만들어지는 지위와 부와 명예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끊임없이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사회의 시험이요 투쟁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죽음의 길을 가는 길목이 온통 시험과 쟁취라면 너무 험하다. 많은 시인들이 읊었던 아름다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아야 옳다. 하지만 풍요와 평화를 품에 안고 사는 트인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삶의 쟁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소로가 있고 잃었던 자신을 찾을 수 있음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정답은 자신에게 있다. 바로 작은 여유다. 문득 돌아보는 자신에게서 찾는 작은 느낌표는 결코 말처럼 작지 않다. 큰 깨달음이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국민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가 죽는다. 남기는 것은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몰아넣은 자식과 쓰지 않으면 숫자에 불과한 통장의 돈이다. 현실을 말하지만 현실은 내 인생을 돌이켜 주지 않는다. 삶을 송두리째 희생하라는 것도 아니다. 문득 다가오는 작은 여유를 챙기라는 말이다. 때로는 사진기를 둘러메고 자연 속으로 때로는 모필을 즐기며 묵향에 젖어보는 것도 작은 여유들이다. 틈새 여유가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고 큰 풍요를 선사할 수도 있다. 사진기의 작은 앵글로 들여다보는 마이크로의 들꽃 세상은 경이로 다가오고 조상을 베끼는 묵향은 삶에 짙은 향기를 선물할 것이다. 건조했던 자신의 인생을 바꿔주는 계기로 작용하는 작은 여유의 시작이다. 성공은 먼 곳에 있지 않으며 행복과는 무관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부터 전신(錢神)은 망신(亡神)이라 했다. 그래도 부와 명예가 좋다면 소신이니 탓할 바는 없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 자기는 이미 자신이 버린 허상이다. 방과 그릇은 속이 비어야 쓸모가 있다.(無用之用) 우리도 마음을 비워서 쓰임을 찾아보자. 비움은 바로 여유다. 여유는 누구나 마음에 존재한다.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비우면 문득 보인다. 작은 여유는 인생에 커다란 풍요를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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