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됫박, 양은냄비, 나무서랍… 골동품이 문패로
대마면 남산마을에선 집집마다 예술작품을 문패로 내건다. 남산마을가꾸기 추진위원회 위원들 앞으로 곧 집집마다 걸릴 문패들이 보인다.
대문마다 예술작품 걸렸네
햇살 좋은 겨울날 대마면 남산마을 노인정 앞마당에 크고 작은 나무 조각들이 널려있다.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나무 조각 위에는 마을 주민들의 이름이 곱게도 새겨져 있다. 바로 남산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문패이다.
“우리 선조 때부터 쓰던 됫박이라 100년 가까이는 됐죠.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디 이렇게 박아 놓은 게 돈의 가치가 더 있겄죠?”
낡은 됫박으로 만든 문패의 주인은 마을 이장 김기남 씨이다. 창고에서 발견한 됫박은 100년이란 세월을 버티느라 나무가 삭아서 덜렁덜렁한 상태였다. 됫박을 해체하고 다시 단단히 못질해 이름을 새겼다. 옆면에는 이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그려 넣었다. 얼마나 많은 쌀을 퍼 올렸는지 모서리가 닳고 닳아 둥글둥글하다.
밭에서 나뒹굴던 큼지막한 편백나무 동가리도 통째로 예쁜 문패가 되었다. 문패 중에서도 크기가 제일 크다. 이전기 씨 댁 대문 옆 돌담 위에 얹어 놓으니 제자리를 찾은 듯 딱 맞다. 1년 전쯤 아들이 결혼하면서 며느리가 키우던 강아지를 바쁘다고 시골집에 맡겼다. 강아지 별이도 우리 식구라고 한쪽에 새겨놓은 것이 참 앙증맞다.
“감사하죠. 시골이 뽄이 나잖아요.”
맛집으로 소문난 남산골식당에도 새 문패가 걸렸다. 이웃집에서 찾은 오래된 책상서랍에 식당 이름과 이건남·김순옥 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집 문패도 자세히 보면 참 재밌다. 옛날에 동네 목수가 직접 나무를 켜서 만든 서랍이라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랍 안쪽은 안 보이는 곳이라고 마감질을 대충했는지 모양이 들쑥날쑥하다. 이 집은 생선구이가 맛있다며 양은냄비 조각으로 물고기 모양 장식을 만들어 달아 꾸몄다. 그 시절 구멍 난 양은냄비를 은박지로 때워서 쓰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문패에 달린 양은냄비 장식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 키우는 집에는 소가 염소 키우는 집에는 염소, 어느 집은 거북이가 눈에 띄어서 거북이 장식을 달아놨다.
“재료들을 구하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데 옛날 고물딱지 같은 거는 싹 다 버려갖고 없어. 환장하겄더라고. 청소를 을마나 잘해놨는지.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 이런 고물들이 쌓여 있었는데 지금은 참 가슴이 아프더라고.”
남산마을가꾸기 사업을 이끌고 있는 황대권 작가는 시골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마을에 아쉬움을 토로한다. 조금 더 다양한 모양새의 문패들이 나오길 바랐는데 마을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봐도 쓸만한 고물들이 많이 없어서 참 안타깝다.
문패에 적힌 이름은 한지공예가로 알려진 이종국 작가가 직접 새긴 글씨다. 집집마다 사연 있는 재료에 유명 미술가의 친필이 담긴 문패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외부사람들이 마을을 방문하게 되면 궁금하잖아. ‘문패가 신기하네’ ‘이런 문패는 처음 봤네’ 하면서. 다음 집 보니까 모양이 또 달라. 그러면 궁금해갖고 그다음 집은 또 문패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가는 거야.”
마을주변의 자연석을 끌어모아서 그대로 쌓은 돌담, 저수지 주위로 가꾼 생태탐방로, 이번에 새로 단 문패까지. 남산마을은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마을주민들의 흔적과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문패가 외지인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