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아무리 빨라도 시간만큼은 아니라는 말을 체감하게 하는 계절이다. 현관 앞에 내어 놓은 화분의 제법 큰 나무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동사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뜰 앞의 홍매와 산수유가 만개했다. 봄은 이미 곁자리를 잡았는데 마음은 아직 풀리지 않으니 ‘춘래불사춘(春來弗似春)’이다. 2년 전에 유행했던 성어다. 하지만 올해만큼 절실했을까.
60세를 넘기면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시간이란 개념이다. 그런데 작년 한 해를 고스란히 까먹고 다시 맞이하는 봄이 여전히 코로나 정국이라니 몸도 마음도 춥기만 하다. 봄은 왔는데 체감은 아직 겨울이다. 특히 문화예술에 삶의 기반을 두고 살던 회원들이 입은 타격은 경제적인 상황을 떠나 삶의 기력을 잃었다. 대부분 공부할 장소를 잃었고 공연의 기회를 잃었다. 안타깝게도 일 년이라는 세월을 코로나에게 헌납한 것이다.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고 맞이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다시 코로나와의 대치이니 모두 죽을 맛이다. 그래도 백신 주사가 출발했고 당장은 아니지만 끝이 나오리라는 기대감은 더해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까지는 이대로 버텨야할 것 같은 추세다. 쥐꼬리 시간 강의료와 공연으로 근근한 생활을 이어가는 문예인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기간이다. 그래서 이번 4차 지원금은 더욱 아프다. 선별지원이라는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부와 명예의 기득권자들이 책상 앞에서 정하는 정책이니 바닥에서 허덕이는 서민들이 겪는 지원의 사각지대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선별 기준의 모호함에 서민은 다시 헷갈린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서민의 동조를 얻지 못하면 거두어들임이 맞다. 작년에 시행했던 2차 선별지원금 해당자들이 빠짐없이 혜택을 받았는지도 의문이다. 해당 여부의 충족 요건은 본인의 몫이기 때문인데 증빙서류 없이 그냥 지원해줄 행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방법을 몰라서 혹은 서류구비를 못해서 신청조차 하지 못한 당사자들이 많아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는 해당자가 많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다시 선별지급이다.
농업인과 중소사업자, 개인사업자 등 뭐라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작은 지원금 혹은 직불금이라도 수령을 하지만 실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차상위계층은 아무것도 받을 게 없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보다 오히려 사회적 소외가 더욱 힘든 계층이다. 코로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만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장에 나가 일일 벌이를 하던 소매점등록도 없는 바닥 서민들은 더 힘들다. 그런데 구세주처럼 기다리던 국가 지원을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선별해서 지급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편지급은 부자들까지 모두 해당이 되니 부당하다는 말은 억지다. 선별이든 보편이든 국민지원금은 무슨 돈으로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대부분 부자들이 낸 세금을 가장 큰 재원으로 삼는다. 일반인보다 수십 혹은 수백 배를 더 내는 사람들에게 같은 한 몫을 주기 싫어 선별로 한다는 개념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미 보편지급이 훨씬 효과가 크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그런데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정책 다툼에 서민의 현실을 희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여기에 다가오는 양대 시장보궐선거는 더욱 춥기만 하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LH투기 건까지 터졌다. 일이년 사이에 일어난 부당투기는 아니겠지만 사과는 현 정부의 몫이다. 과거 정부에선 거의 검찰이 덮고 넘어간 이유다. 전혀 움직이지 않던 수사권은 갑자기 풍선을 터뜨리듯 언론과 함께 파상공세를 하고 있다. 그래도 현 정부는 묵묵히 공정한 수사로 모두 털어내야만 한다.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시장선거 두 곳이 모두 패배해도 상관없다. 온통 부패와 거짓으로 일관하는 야권 두 후보의 비겁함보다는 차라리 지는 선거가 아름답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지금 털지 않으면 다가올 대선은 LH 사태가 다시 불씨가 되어 피어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올해도 많이 춥겠지만 민족성을 살려 참으며 정의라도 세워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