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수 영광농협 조합장

조선 시대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맏아들이나 둘째 아들, 딸 구별 없이 모두에게 같이 재산을 나눠 주어야 한다는 균분 상속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제사를 지내는 자식만 상속분을 더 보상해 준다는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의 장손의 지위는 다른 형제간들과 비교가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존재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큰아들만큼은 가르칠 수 있는 데까지 뒷바라지를 했고, 상속도 그에 걸맞게 차별을 했다. 왜 이런 풍습이 내려왔을까?

남녀 차별과 장남 우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큰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 후기인 17~18세기 무렵이며 이후 유교적 이념인, 맏아들인 적장자가 제사와 상속의 중심으로 삼는 종법 제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약 200여 년 넘게 이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장손은 조상들 제사를 지내는 주체였고 부모님 사후에도 집안의 안녕과 질서를 책임지고 관장하라는 무언의 약속에서 내려왔던 우리 민족 풍속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풍습은 점차 쇠퇴해 갔을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더 대접받고 더 가르친 큰아들이 큰 아들의 역할을 제대로하지 못한 것도 그중에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장손으로 해야 할 역할을 할 수 없는 형편인 경우가 대다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형편상 어쩔 수 없었을 때는 부모도 형제간도 이해하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더 배우고 더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고마운 마음에 주변에 더 베풀고, 고마워하기보다 남들과는 다른 특권층으로 생각하며 갑의 처지에서 더 혜택을 받고자 하고 예외이기를 바라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고유의 미풍양속 즉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아닌 법과 제도만을 강조하고 사회적인 지위와 금전이 만사를 해결하는 잘못된 풍토가 만들어지면서 더 많이 배운 것과 인성은 반비례하는 삭막한 사회가 된 원인으로 생각한다.

무슨 뜬금없이 장손 타령인가 하실 것이다. 그 시기에도 별의별 사람들도 많았지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써 도덕이 중시되는 사회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법과 제도가 만능이 되어가고 금전과 권력이 진실을 왜곡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 데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모두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자식들의 인성은 뒤로하고 좋은 대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였고, 더욱이 법조인이나 의사, 언론인이 되면 출세했다고 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본질을 벗어난 잘못을 해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법조인은 법이라는 잣대를 가난하고 힘없는 자가 억울하지 않게 판단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고, 의사는 아픈 사람에게 있어 귀천을 떠나 살려내고 치료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언론인은 힘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정의가 확립되고 도덕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요즈음 죄를 지은 자에 대해 해외 도주를 못 하게 막았다고 절차상 잘못을 따지며 구속을 해야 한다고들 하니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 것일까?

의사가 중대범죄를 저지르면 면허를 정지시키는 것에 반하여 이 심각한 코로나 정국에 집단행동을 운운하는 분들이 의사분들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나부터도 내 주변에 법조인이 되고 의사가 되면 축하하고 부러워한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법조인이나 의사, 언론인들이 전부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대다수 분은 본분을 다하면서 이 사회를 지켜 주시기에 그래도 이 사회는 아직도 살만한 사회가 지속하고 있다는 확신을 해본다.

이제 우리 모두 한 번쯤 깊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본질이 우선되지 않는 이러한 사회풍토를 조성하는데 우리는 모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 자신 내 가족부터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동참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서두에 장손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찌 보면 연세 드신 원로 조합원들에게는 농협의 장손이나 다름없으며, 우리 농협과 관련된 사항을 말씀드리기 위함이다. 정부 정책이 대농 위주의 정책으로 가다 보니 연세 드신 원로 조합원들께서는 몸이 불편하신 이유도 있지만, 농사를 지어도 너무 타산이 맞지 않아 농지를 임대한 분들도 있으시고 아예 매도하신 분들도 있다. 그런데 정부로서는 농협의 조합원 자격은 300평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거나 가축의 경우 소, 돼지, , 양봉 등 일정 부분을 직접 사육하지 않으면 조합원의 자격이 없으니 탈퇴를 시키도록 하고 있어 우리 농협만 해도 300~400명의 원로 조합원들이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강제 탈퇴를 당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물론 정부의 태도도 이해할 수 있다. 조합장 선거와 연관되어 무자격자를 가입시키거나 탈퇴시키지 않음으로 인해 선거 이후 여러 조합이 소송에 휘말리다 보니 사전에 정비하자는 처지지만, 중앙회 설립 60여 년, 지역농협 설립 50여 년이 되어 가도록 도시농협을 제외하고는 시골농협 대부분이 조합원들에게 이용만 강요했을 뿐 지금까지 주인 대접 한번 못했는데 이제 겨우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처지에서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름이 있느냐는 생각을 해보며 정말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정부, 국회, 중앙회에 적어도 20년 이상 농협 조합원 신분을 유지했던 분들께는 관외 이거나 병원 입원의 경우가 아니면 건강이 허락해서 활동하실 때까지 조합원 신분을 유지 시킬 수 있도록 건의한 상태이지만 심정은 편치 못한 실정이다.

원로 조합원들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농협이 있고 그분들이 농촌에서 묵묵히 희생하면서 살아오셨기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다고 할 때 법과 제도라는 틀 속에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요즈음 법조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요즈음 농지의 경자유전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농업 외 농지이용으로 논란이 많이 일고 있다. 필자도 근본적으로 농지는 농지로 보전되어야 하고 사용되어야 한다는데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쇠퇴일로에 있는 농업문제 해결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비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데 계속 생산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요즈음 농산물 가격이 올라갔다고 야단이다. 대파의 경우 약 240% 상승한 1만원이 넘어섰다고 발표하는 등 어쩌다 작황 부진으로 가격이 오르면 호들갑에 가격을 조기 안정시킨다면 명목으로 수입은 어찌나 신속한지 모르겠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장한데는 농업인이 피와 땀의 역할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사회 지도층과 위정자들께서는 각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이하여 어김없이 각종 농작물 생산을 준비하시는 농가들의 일손이 서서히 분주해 지고 있다. 제발 올해부터는 생산한 모든 농산물이 생산비를 보상받는 원년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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