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根深之木, 風亦不扤(근심지목 풍역불올)

有灼其華, 有蕡其實(유작기화유분기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많이 피고 열매가 많이 열리느니라."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에 다시 서니 산천은 의구하단 시인의 말 허사로고. 예 섯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료"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외람되이 애국가 가사 한 소절과 용비어천가한 대목을 인용하고, 옛 성현들의 시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단순히 나무(소나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 나무에 깃들어 있는 혼과 역사, 정신 등 그 상징성과 가치를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는 말 그대로 우리 민족혼의 상징이자 강인한 기상으로써의 푸르름이며, 세종대왕의 용비어천가 제2장에 나오는 그 나무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간직해 온 뿌리 깊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의미하고, 이은상 시에 나오는 소나무는 졸부들의 무지몽매한 야욕에 의해 역사의 희생냥이 되어버린 큰 인물과 영웅호걸들의 상징이다. 그리고 성삼문의 소나무는 충절과 의리를 져버리지 않는 의인의 표상이다.

염산 면사무소 부지 내에 서 있던 소나무들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군은 청사를 신축한다는 구실로 일반 면민들의 의견 한 마디 들어보지 않고 순식간에 그 나무들을 파내버렸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이겨내고 6.25 전쟁의 상처와 한 많은 보릿고개 등 수많은 질곡과 시련을 견디어 내면서 오늘까지 이어 온 염산면의 역사를 송두리째 사장시키는 일이며, 면민들의 애환과 희노애락의 정서 그리고 정신과 영혼까지도 뿌리째 뽑아 없애버린 무지막지한 행정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염산 면민들은 지금 면민의 혼이 해체되고, 정신과 역사의 상징이 없어져버린 상실감에 분노를 넘어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의식과 개념의 부재 속에 저질러진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참으로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도심의 교통 편의를 위해 숭례문, 경복궁 등 국가적 문화재를 헐어버리겠다는 치졸한 발상과 무엇이 다른가?

일제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전 국토의 혈자리마다 쇠말뚝을 박아대고, 우리의 전통인 상투를 잘라내고, 우리말(한글)을 못쓰게 한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88년엔 현재의 군청사를 짖기 위해, 조선시대 영광 관아의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문화재급 건축물인 "운금정"을 없애버리더니 그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오늘 또다시 되풀이 한 것이다.

"나무가 늙어서 결국은 죽게 될 것이기에 파내고 새로운 나무로 대체하려는 것"이라고 옹색한 해명을 하지 말라. 그렇다면 무조건 파내버리기 전에 살리려는 노력을 먼저 했어야 한다.

산림청은 충북 보은의 법주사 입구 정이품송의 혼을 계승하고 역사적 맥을 잇기 위해 2세대를 육성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수종이 좋지 않은 육송이라서 보기 좋은 해송으로 교체하고, 지금보다 더 멋있게 조경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구차한 변명도 하지 말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것 아니다.

"면민의 수는 자꾸만 줄어들고 현재 청사도 행정 업무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진데 도데체 그 역사적 상징까지 훼손해가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청사를 신축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영광군의 재정이 그렇게도 남아도는 것이며, 청사 신축이 그리도 절실한 것이고 돈 쓸데가 그렇게도 없는가?"

사후의 약방문격이 되어버린 면민들의 볼멘 소리가 더욱 허탈함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 영광군만은 지방자치라는 열린 행정의 광장에 졸부들이 모여서 도토리 키재기 하며 지들끼리 가장행렬이나 벌이는 그런 유희의 장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랬으나 그 바람 또한 헛된 꿈이었다는 생각이 앞선다.

불행하게도 신축 될 염산면사무소 청사는 무지몽매한 오늘의 행정가들에 의해 전통의 가치, 정신의 가치, 역사의 숨결, 면민의 혼이 뿌리째 뽑혀버린 치욕의 상징으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이제 더 이상은 이런 행정적 과오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이제라도 나머지 나무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토록 보호수 지정이나 지방 기념물 지정...등의 대책을 마련하라.

뿌리가 약한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기 쉽고, 혼이 없는 육신은 숨쉬는 목내이에 지나지 않는다.

面所長松方扶疎(면소장송방부소)

秋夜滿月枝輪低(추야만월지윤저)

無心靜時風乍起(무심정시풍사기)

枝間舞月地影振(지간무월지영진)

면사무소 큰 소나무가지 사방으로 늘어져 있고

가을 밤 둥근 달은 나지막이 걸려있네.

사심 없이 고요 할 때 잠간 바람 일어나니

둥근 달은 가지 사이에서 춤을 추고 그림자는 땅 위에서 흔들리네.

지팽이 던져 짚고/산기슭 돌아서니

어느해 풍우엔지/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솔이 나서/키를 재려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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