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요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 전쟁의 현장을 보면서 21세기의 의미를 새겨보게 된다. 1차와 2차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에서 벌어진 소위 동아시아 패권 전쟁을 겪으며 고비만 넘기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결과는 거의 절망에 가깝다. 전쟁은 오히려 생활 속까지 스며들었고 세계1위 국가라는 미국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후진국 형 묻지 마총기난사 사태로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미얀마 민주화운동은 매일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시민학살운동으로 치닫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역시 전쟁이라는 대등한 단어를 선택하고 있지만 행동은 일방적 학살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의 혼돈이요 아수라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사태와 거의 닮은꼴이었던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참혹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직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조차 없는 실정이다. 직접 동시대를 겪었던 세대의 놀라움은 현재 진행 중이고 당사자와 유족의 아픔 역시 진행 중이다. 행동의 가해자였던 당시 군인들과 피해자였던 광주시민의 지독한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이를 명령한 진짜 가해자는 조국을 구한 영웅 행세를 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나라다. 여기에 정의와 도덕까지 자신들의 행동에 합리화시켜 그럴듯한 자서전까지 써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가 막힌 이유로 처벌하지 않았다. 당시 참혹했던 진압현장을 언론은 다루지 않았으며 한참 지난 후에야 우리는 외신과 그들의 촬영물을 통해서 간접 시청을 했을 뿐이다. 그나마 언론이 아닌 천주교 성당에서 비밀리에 틀어주는 영상을 통해서다. 이미 이때부터 기자와 검찰의 현재 모습이 유추되고 있음이다.

현재 우리는 미얀마에 특파원을 보내지 않고 있다. 보도는 현지의 전달로 이뤄지고 있으며 사실 확인도 하지 못하고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5.18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슴에 안고 있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 오히려 포스코 등의 기업들이 미얀마 군부와 사업공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본의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아비규환은 팔레스타인이다. 말은 전쟁이지만 실제는 일방적 학살이다. 이스라엘의 공격 명분은 테러에 대한 응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나가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세 명 중 한명은 어린아이들이다. 2천 년 전 자신들이 믿는 신의 약속이라며 남의 나라를 무작정 점령하고 원주민들을 장벽에 가둬버린 행위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지만 미국과 영국 등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건국을 기꺼이 승인해 주었다. 이렇게 불과 70여 년 전인 1948년 이스라엘은 건국했고 원주인이었던 팔레스타인은 지구에서 가장 비참하게 내몰리고 말았다. 신을 빙자한 비극이다. 유대인들이 믿는 신의 주어가 사랑이다. 하지만 매일 이어지는 피의 탄압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가자 지구는 현재 커다란 수용소가 되었다. 그리고 매일 이곳에 폭탄이 쏟아지고 있으며 어린아이까지 죽어나가고 있다. 침략자 백인 한명이 죽으면 원주민 30~40명이 죽어야 한다던 100여 년 전의 광포한 논리가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는 다른 형태의 인종말살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별칭은 피와 눈물이 흐르는 땅으로 변했다. 그것도 사람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소위 점령촌이라는 것을 세우고 모든 사람들의 자유권을 빼앗았다. 미국이 아메리카를 점령하고 인디오들을 학살하며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울타리 안에 밀어 넣었던 행동과 일치한다. 이들에겐 자신들 외의 생명엔 관심이 없다. 미얀마는 5.18의 재현이고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인디오의 재현이다. 불행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비참하다. 가해자는 풍족하고 피해자는 빈한하다. 정의는 무겁고 불의는 가볍다. 먼저 떠 오른 불의가 세상을 움직이고 가라앉은 정의는 떠오를 기미가 없다. 정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는 훗날 역사책에서나 가능하다. 그리고 현실은 여전히 불의가 이어간다. 힘 있는 자의 논리가 정의가 되는 현상이 아직 이 땅에서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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