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임 사)영광여성의전화 활동가

2018년 어느날 아버지를 사형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제목만 봐서는 도저희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왜 딸이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사형해 달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청원은 바로 그해 일어났던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이혼 후 세자매를 키우며 살고 있던 여성이었으며 15차례나 칼에 찔리는 무차별 살인 사건이었다. 딸들이 지목한 가해자는 놀랍게도 바로 그들의 아버지이자 피해자의 전남편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몇 년 전 심각한 가정폭력을 행사하여 고소를 당했지만, 가해자에게 어떤 처벌도 내려지지 않은 채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 오히려 피해자가 여성보호센터로 피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가해자는 이혼 후에도 위치 추적과 스토킹을 지속하였다. 이 사건은 예고된 살인이었지만, 국가의 그 어떤 시스템도 예고된 살인을 막지 못 했다.

그 뿐만 아니라 50대 남편이 욕실에 아내 감금,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으나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는 내용, 그리고 차라리 찔리세요. 증거남게라고 말하는 수사기관의 가정폭력 2차피해에 관한 내용 등 이러한 내용의 기사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언론을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하곤 한다.

1997년 피해자와 가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과거 부부 싸움 정도의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던 가정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국가와 사회공동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선다라는 내용의 특례법이다. 법까지 제정되어 있고 처벌법이란 이름에 걸맞게 처벌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왜 피해자의 목숨을 위협하거나 해하는 심각한 가정폭력 2차피해가 발생하고 있을까? 이는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을 살펴보면 그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목적조항이란 법이 달성하는 목적과 입법취지를 국민이 이해하도록 밝혀둔 조항이다. 그리고 법령의 개별 조문에 대한 해석 및 집행지침을 제시하고 법의 제1조에 두며,(목적)으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처벌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은 무엇일까?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1(목적) 이법은 가정폭력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성과 성행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정폭력 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보호처분을 함으로써라는 내용은 범죄를 범한 범죄자이지만 범죄자에게 맞는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 가정폭력처벌법의 현실이다. 목적조항에 따라 상담으로 처벌을 대신하고(9조의2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교육으로 처벌을 대신하고(30조 보호처분결정등)있다.

실제로 2020년 조사결과 접근제한 0.32%, 전기통신 이용접근 제한 0.01%, 치료위탁 0.45%, 사회봉사·수강명령 18.77%, 상담위탁 27.47%로 월등히 높은 상담과 교육으로 대신하는 처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검사는 가정폭력범죄사건을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 할 수 있다는 목적조항에 따라 처벌해야할 가해자를 보호처분한다. 실제로 상담을 위탁받은 가정폭력가해자를 분석해보면 배우자의 목을 조른 경우, 칼이나 흉기로 위협한 경우, 담뱃불로 지지거나 칼이나 흉기를 휘두른 경우가 56.8%에 달한다.

이 모든 행위가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심각한 범죄행위로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일어난 폭력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상담과 교육으로 처벌을 대신하고 있다. 가해자에게 상담이 처벌이 될 수 없다. 상담은 피해자의 생존과 인권을 위해 행해져야 하는 일이며 가해자는 법에 의해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

2021121일부터 일부 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이 시행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보호 강화와 가정폭력가해자의 처벌 강화 등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부 개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전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을 지키자는 목적조항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다.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으로 한 때 집집마다 가훈으로 이 글귀를 집 한 켠에 걸기도 했다. 그러나 폭력이 있어도 가족 구성원의 화목을 위해 가정이 유지되어야 마땅할까? 과연 폭력이 있는 가정을 유지한다고 법 조항처럼 가장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상담과 교육으로 처벌을 면제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가정폭력처벌법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가정의 화목과 안녕을 유지하자는 법 대신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가정폭력처벌법이 필요하다.

가정폭력도 명백한 범죄임을 인식하고 가해자에게 마땅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제대로 된 국가시스템과 사회공동체의 관심이 심각한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구 할 수 있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보장되지 않음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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