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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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상군(孟嘗君)과 풍훤(馮諼)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에게 풍훤(馮諼)이라는 식객(食客)이 있었다,

맹상군은 계명구도(鷄鳴狗盜-소양왕의 초청으로 진나라에 들어갔던 맹상군이 진나라 대신들의 시기질투로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도둑질 잘하는 자의 도움을 받아 소양왕의 후궁에게 뇌물을 주고 도망을 치던 중 한밤중에 닭울음 소리를 내어 굳게 닫힌 함곡관의 성문을 열게 함으로써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고사성어-)같은 작은 재주를 가진 자들도 식객으로 들이다 보니 그 수가 무려 3천이 넘었다.

본디 집이 매우 가난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풍훤도 맹상군의 소문을 듣고 먼길을 찾아가 식객으로 받아주기를 청했다.

맹상군은 풍훤이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몰골이 하도 우스워 받아주었으나 집안의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가 없는 그를 얕잡아 보며 잡곡밥에 푸성귀만 주면서 음식 대접을 소홀히 했다.

그는 잠자리가 불편하고 고기반찬이 없다며 늘 투덜댔는데 좋은 숙소로 옮겨 주면 이번에는 타고 다닐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당시 맹상군은 봉읍지인 설땅(지금의 산둥성 텅저우)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음으로 영지의 백성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빚을 제때에 갚지 않자 무위도식하는 풍훤을 설땅에 보내 빚을 받아오도록 했다.

출발할 때 풍훤이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대답하였다.

은혜와 의리를 사다

설땅에 도착한 풍훤은 빚을 진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서 채무를 하나하나 대조해 보게 했다. 그러고는 맹상군이 빚을 탕감해 주기로 했다고 선포하고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빚문서를 불태워버리자 백성들이 맹상군에게 크게 감사해 했다.

이튿날 풍훤이 도성으로 돌아오자 맹상군이 그가 빨리 돌아온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하며 빚은 다 받아왔는가?”라고 묻자 그는, 다 받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럼 무엇을 사왔는가?”라고 다시 묻자 분부대로 공자님 댁에 없는 것을 사왔습니다. 소인이 보건대 공자님 댁에는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오직 ()’가 부족한 것 같아서 를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맹상군이 어리둥절해 하자 소인은 공자님의 허락도 없이 사사로이 공자님의 결정이라고 꾸며 그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으며 빚 문서도 전부 태워버렸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같이 공자님의 은덕을 잊지 않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소인은 공자님에게 의리를 사왔습니다.”라고 말했다.

1년 후,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이 맹상군의 직위를 박탈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봉읍지인 설땅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설땅의 백성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백 리 밖까지 나와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그 광경을 보며 크게 감동했던 맹상군은 풍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에야 비로소 자네가 사 왔다는 은혜와 의리를 이 눈으로 보게 되었네.”

교토삼굴(狡兎三窟)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교활한(지혜있는) 토끼는 구멍을 세 개씩 뚫어놓는다는 고사성어다.

풍훤의 외교력으로 맹상군의 실력을 흠모하게 된 위()나라 혜왕(惠王)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때마다 풍훤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권했다.

이 사실이 제나라에 알려지자 그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린 민왕이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다음, 재상의 직위를 복원시켜 주었다.

또한 풍훤은 민왕에게 상소하여 맹상군의 봉읍지인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하고,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비치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풍훤은 맹상군에게 이것으로 세 개의 안전판이 완성되었으니 이젠 고침안면 하십시오.“라고 말했다는 것에서 교토삼굴의 고사성어가 비롯되었다.

이 후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하는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개그프로그램이 있었다.

소위 이라 일컬어지는 아빠찬스나 엄마찬스를 이용할 수 없는 청소년들의 응어리를 개그로 엮은 프로이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고 가재, 개구리, 붕어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느 전직 장관의 말처럼 이제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은 전설이 되어버렸다.

맹상군의 거지 식객 풍훤처럼 아무리 재주가 없고 배움이 적는 사람일지라도 어딘가에는 꼭 필요한 곳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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