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며칠간의 장맛비가 씻어낸 섬들의 싱그러운 초록을 품어안은 바다.
아직은 소나기성 짙은 구름들이 끝없는 화폭을 변화무쌍하게 그록키 하고있는 하늘마저 흡수해버린 칠월의 바다.
습도 높은 바람과 뜨거운 햇빛으로 숨이 막힐 지경의 한여름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습한 열기 속으로 출항을 한다.
바다의 그 무엇이 이토록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출항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는걸까?
지금까지는 그저 낚시가 좋아서, 또는 고기를 잡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그런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그런 나에 대한 의심이 들기시작했다.
"너 진짜 낚시 좋아해?"
"좋아는 하지만 만사 제쳐두고 좋아할 정도는 아냐"
"그럼 고기 많이 잡고 싶어?"
"아니, 많이 잡으면 좋고 못잡으면 말고..."
내가 죽자사자 틈만 나면 바다로 나가는 이유가 낚시 때문만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게 무얼까?
내리쬐는 강열한 햇빛을 가려줄 차광막도 없는 선상에선 수면에 부딫혀 되돌아와 두 눈을 강타하는 그 반사광 때문에 눈조차 뜨기 함들고,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버린 온 몸은 바다의 높은 습도까지 더해지면서 끈적끈적 정신마져 혼미해질 지경이지만 그래도 참고 견디며 낚시를 드리운 채 입질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시간들ㆍㆍㆍ
어느 순간 초릿대 끝에 고정된 시선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제법 굵직한 진동이 전해진다.
두 손으로 낚싯대를 움켜쥐고 챔질을 하려는 순간 낚시줄 주변의 수면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무엇이 있었다.
너울너울, 마치 우리의 전통무용인 한량무의 춤사위에서 소매자락이 나부끼듯 부드럽고 고요하
게 움직이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것은?
아ㅡ그 움직임만큼이나 부드럽고 매끈하며 완벽한 곡선을 간직한 수십마리의 해파리들이 아닌가!
그러더니 그 해파리들은 나의 눈을 의심할정도로 경이로운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탈레스를 비롯한 아낙시만드로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노자, 공자 등 고대철학자들로부터
칸트, 니체, 데카르트, 스피노자, 아인슈타인...등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자들로 변신을 하더니 열띤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토론장에 모여든 방청객들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하는 대권주자들과 국회의원 등 정치하는 모든 사람들이 방청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치하는 그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귀는 없고 두 눈만 크게 달려 있고 허리가 휠정도로 무거운 가방을 하나씩 짊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럽게 여긴 철학자들이
"왜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 하느냐? 바닥에 내려놓고 편안히 들어라" 라고 권유해도 그들은 그 가방을 절대 내려놓지 않고 더욱 멜빵을 조여매기만 했다.
궁금증이 더해진 철학자들이 그들의 가방을 열어보니 그 속엔 하나 같이 이런 것들로 가득 차있었다.
허세, 욕망덩어리, 거짓말, 네거티브, 모함, 공작정치, 혹세무민, 내로남불, 직권남용, 말바꾸기, 떠넘기기, 아전인수, 아집, 편견, 집단이기주의, 이념의 노예근성, 이중의 잣대, 거짓 인권, 획일주의, 일방통행, 반성과 변화의 두려움, 억지 논리, 자기 합리화, 지식 오용, 무지, 어리석음...등등
그 것을 확인한 철학자들이 토론의 결론을 내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너희들의 생각이나 주장, 그리고 행동이 나쁘거나 틀린 것이 아니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적인 것 또한 아님을 명심하라"
더위도 잊은 채 그런 장면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서쪽으로부터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이내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퍼뜩 정신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보니 해파리도 철학자들도 청중들도 온데 간데 없고 진짜 고기 입질이 왔는지 낚싯대의 초릿대가 까딱거리고 있다.
묵직한 중량감을 느끼며 서둘러 닐을 감고 낚시를 건져올리자 빈 낚시에 폐그물 한 조각이 따라올라왔다.
그래도 오늘 낚시는 대물을 낚았다는 생각으로 배를 몰아 귀항하는 내얼굴에 한 줄기 시원한 빗방울을 흩뿌리며 녹초가 된 몸을 식혀주는 칠월의 바다는 세상의 바다에서 끈적거림에 시달리는 내 육신과 영혼을 향해 내일 또다시 출항의 손짓을 보내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