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신문 편집위원·영광군가족센터장

내 삶의 가장 큰 의미

내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있었다.

202111, 미국의 조사 전문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전 세계 선진 17개국 시민 1,9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던 내용이다.

설문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족(Family)을 제일로 선택한 반면 유일하게 한국인들만이 잘먹고 잘사는 웰빙(Material well-being) ,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는 결과발표가 있어 다소 충격(?)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 시민들은 가족에 이어 두 번째로 직업(Occupation)을 꼽았으며 친구(Friend)나 건강(Health) 또는 물질적 행복은 그 뒷 순위였다.

물론 다른 나라 시민들이 물질적 행복을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도 그 물질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대상 즉,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해석이다.

스페인 국민이 1위로 선택한 건강(Health)과 함께 사회적 공동체(Society)를 제일로 여기는 대만(Taiwan)의 경우를 제외하면 유독 한국인들만이 물질적 요인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선진국 지위변경

20217월 개최된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이사회 폐막 세션에서는 한국의 선진국으로의 지위변경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포함되는 A그룹(아시아 아프리카)에 머물러 있었으나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에 진입을 하고 P4G 정상회의 개최와 G7 정상회의에 초청되는 등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명실공히 B그룹(선진국)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평가한 1인당 국민소득에서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짧은 기간에 선진국을 따라잡은 일이 극히 드문 경우이기에 우리는 크게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져가는 현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제의 수탈에 이어 한국동란이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조국을 선진국반열에 오르게 했던 한국인들에게 물질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물질적 풍요를 제일로 선택했던 이면에는 치열한 경쟁과 각자도생 속에서 미래의 삶을 지탱해줄 물질에 대한 의타심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던 서방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전 세계 국가가 부러워할 만큼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쥔 기득권층의 세력은 더 강하고 커졌으며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계층간 신뢰와 연대감은 갈수록 떨어지고 사회적 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한 반면 잘사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전혀 다른 나라에 사는 것 같은 이질적인 세상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물질()이 아니었을까.

선진국 그늘에 가린 사각지대

한국인들은 분명 과거보다 훨씬 더 잘살게 되었지만, 과연 한국인들은 더 행복해졌으며 한국 사회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진국 진입의 그늘에 가려진 사각지대는 여전히 어둡고 추워만 보인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정규직 등 안정적인 직장에서 소외된 많은 젊은이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기존사회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결혼을 기피하거나 출산을 포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집단자살 사회라고까지 표현되는 극단적인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안타까운 지적이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에서 운 좋게 태어난 한국의 청소년들도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행복도가 매우 낮은 편이며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청소년들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었다.

선진국이라면서도 상대적 빈곤감은 극에 달하고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로 높은 수준인데도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OECD 평균(20%)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얼마 전, 모 대선 후보는 국민소득 5만달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세한 한국에서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의 증가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에 소외된 사람들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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