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고대 이래 정치는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다시 정치를 선도해 왔다. 변치 않는 진리다. 하지만 간혹 이러한 진리는 무너졌고 그럴 때마다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진시황은 과거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의미로 분서갱유를 일으켜 상당량의 서책을 불사르고 역사 속 성인의 말씀을 지우려고 시도했다. 과거의 제도를 주장하며 본을 받으려는 행위 자체를 사사로운 학문으로 도당을 이루어 간섭하는 행동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의 중국 통일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통일을 이룬 불과 11년 만에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따온 황제라는 명칭만 남기고 너무도 허망하게 객사했다. 알다시피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다. 우리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현재를 재단하며 때로는 본으로 삼는다. 역사를 지우면 국가가 지워지고 민족정신을 잃으면 민족이 사라진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의 대부분은 민족사학을 연구하던 분들이었다. 민족의 혼을 유지하는 데에는 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친일사학자가 황국사관에 근거해서 쓴 역사서는 대부분 한두 권 읽어봤지만,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읽은 사람은 드물다. 35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에 철저히 세뇌된 교육은 그대로 앙금이 되어 우리 인식의 저변에 자리를 잡았고 아직 진행형이다. 물질의 장악은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의 침식을 벗어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직도 우리 주변엔 친일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특히 고위층의 정치인과 학자, 경제계에는 심각할 정도로 포진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행동과 발언에서 유추하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친일 행동과 일본의 편에서 국익을 말하는 방향성은 속일 수 없기에 드러나는 성향이다. 친일 1세대의 뒤를 잇는 2세대의 발현인 셈이다. 이런 부류가 아직 우리 정치와 학계의 정점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가슴 깊은 곳에 문화사대사상을 간직하고 시선은 항상 해바라기처럼 돌아간다. 이들은 미국이 원하지 않아도 사드를 추가 배치하여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고, 한미일의 공조를 통해 일본군을 인정함은 물론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우리 영토에 들어와도 상관이 없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지도자의 관점에서 공식적으로 할 발언은 아니지만, 진영논리에 빠진 국민의 절반은 환호한다. 해묵은 색깔론을 다시 들고나와도 이를 논박하는 언론은 없으며 자연스럽게 반도 내의 분단을 부추기고 있다. 그야말로 과거를 교훈 삼은 진보가 아니라 과거로의 퇴보이며 회귀다.

중요한 사실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국민의 절반이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위기이기에 더욱 위험하다. 대선 후보가 법에 근거하지 않는 공약을 남발하고 삼권분립을 흔드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도 이를 적시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주류 언론과 대안 언론의 싸움이 되었다. 역사를 돌아봐도 현재는 확실한 위기다.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국가의 위기이고 민족의 위기이다. 대한민국의 위치는 이미 외부의 침범으로 무너질 단계는 넘어섰다. 하지만 내부의 침범으로 절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귀족 정치였다. 그래서 서민은 서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밈이 형성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 이제 최하위층의 나와 너무도 닮은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 그런데 천민 출신이라는 선입견으로 상스럽다라고 표현한다. 서민이 서민을 배척하면 서민의 애환은 풀리지 않는다. 귀족은 가난한 국민을 섬기지 않으며 자신들만의 패밀리 비즈니스를 추구한다. 귀족을 향한 대리만족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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