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시간이란 개념은 단순한 듯 대단히 복잡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정복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하게 만드는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양자학까지 동원해야 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을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갑자기 자신의 바뀐 역할을 시간 속에서 발견했을 뿐이다. 자식의 위치에서 어느새 부모의 위치로, 노화로 인한 의도치 않은 승진을 했다. 시나브로 바뀐 역할에서 무의식의 부모 노릇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가정이라는 기본은 유지하고 있지만, 구성원과 각자의 의무에 관련한 생각은 지난 과거에 묻혔다. 그만큼 사회의 구조 자체가 변했다. 국가의 구조 역시 많이 달라졌다. 왕조 시대의 왕실과 현재의 대통령 시대는 민본이라는 단어만 같이 공유할 뿐 의미는 전혀 다르게 변화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근본적인 느낌까지 변했을지는 의문이다. 왕조 시대의 임금이 부모에 해당했다면 현재의 대통령 역시 바탕에는 부모의 그림자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국민이 부여한 권력과 자격이지만 국가를 대표한다는 위치는 부모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은근히 내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가가 어렵거나 위기에 처하면, 모든 관심과 돌파구를 찾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대통령의 발언과 행동에서 찾으려 한다. 가정이 위기에 처하면 가장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처자의 눈길과 같을 것이다. 가장이 방법이 없다고 주저앉으면 가족은 깊은 실망의 늪으로 빠지고 만다.

현재 대한민국을 위시해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들어서고 있다. 특히 우리는 이미 고물가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분야의 저소득층 영업에서 타격을 받고 있다. 일정 돈벌이가 없는 차상위층은 그나마 굴리던 자동차마저 세워 놓아야 할 형편이고 트럭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예를 들었을 뿐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즘 대통령이 Door Stepping이라는 것을 즐기고 있다. 원래 유명인의 출입처를 지키고 있다가 기습 질문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도어 스테핑이기에 윤 대통령의 소통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이해가 되었지만 내용이 문제다.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천금처럼 무거운 입을 필요로 한다. 단어 하나가 입을 통해 나오면 이미 공적인 대통령의 의사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공권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묻는 말에 세계적인 현상이니 대처 방법이 없다라는 말과 국내 고물가와 금리 질문에 아직 국회도 열리지 않았고, 방법이 없다라는 답변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자신의 일을 국회에 책임을 전가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발언은 국가를 책임지라는 국민의 명을 받은 대통령의 위치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미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내용을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대통령을 처음 모시는 국민의 관점에서 느끼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자식이 부모의 입장이 되는 서민의 깊은 애환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서민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풍족은 간절한 의무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자식은 부모를 향한 공경을 행하고 부모는 자식을 향한 사랑을 베푼다. 여기서 사랑은 부모로서의 강한 책임감을 내포하고 있기에 자식 앞에서 절대 절망을 말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희망을 심어준다. 만일 이러한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가장의 권리만 누리기 위해 자식들을 낳았다면 정상적인 가족의 의미는 상실된다. 자식은 자신의 권력과 명예, 재산의 증식을 위한 이른바 인적 자원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본인은 대통령이 처음이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런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래서 향후 5년간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나만은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시국 역시 처음이다. 대통령은 놀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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