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불상 전한 ‘마라난타’ 찾아나선 순례길

최종걸​​​​​​​ / 현 한국재난안전뉴스 대표, 편집인전 연합뉴스 기자, ‘천년고찰이야기’ 및 ‘불상의 기원을 찾아서’ 저자
최종걸​​​​​​​ / 현 한국재난안전뉴스 대표, 편집인전 연합뉴스 기자, ‘천년고찰이야기’ 및 ‘불상의 기원을 찾아서’ 저자

지난 2012년 필자는 파키스탄 간다라문화협회 초대로 19명의 불자와 함께 간다라 순례길에 나섰다. 그곳은 다름 아닌 영광 법성포를 통해 법을 전하러 오신 마라난타 스님의 고향이다. 또한 불상이 처음 조성된 세계적인 불교유적지이다. 불상은 종교적으로 불교만을 뜻하지 않은 동서양 문화문물 그리고 다양한 종교를 압축한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불교라 보는 시각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부처님 열반 500년이후 불상이 처음 등장했는데 그 불상을 조성한 쿠샨왕조 카니시카 왕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그가 조로아스터교에서 불교로 개종후 불상을 조성했기 때문에 초기 불상에는 종교간 화합을 상징하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당시 종교관에는 신의 이미지는 없다였지만 불상의 출현으로 신의 이미지가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한 게 불상이다.

순례길에 따라 나선 건 고향이 영광이라는 이유 하나였다. 유년시절 서울로 유학후 영광 출신이란 이유로 대우를 받아 본 첫 경험이자 순례길이었다. 순례단에는 박희도 전 육군 참모총장, 정지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송재운 동국대학교 교수, 민희식 박사, 활안 한정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자들이 함께 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순례길이 순교길이 될뻔한 위기의 시간이 현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순례길 바로 1년 전인 2011년 미군 특수부대가 간다라지역에 은거중인 이슬람 근본주의적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 두목 오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덴(빈 라덴)을 은거지에서 사살했다. 하필 그 1주기에 순례에 나선 것이다. 파키스탄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태국에서 환승한 뒤 20시간여 만에 인근 도시 라호르에 도착하면서부터 긴장감은 도를 더했다. 2001911일 뉴욕과 워싱턴에 민항기를 이용, 자폭 테러로 무역센터를 폭파해 2,996명의 목숨을 앗아간 알카에다 두목 빈 라덴 사망 1주기를 앞두고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미국 대사관저에 폭탄 테러가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리 순례단 순례길이 테러조직으로 알려진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은거지여서 괜히 따라 나섰다는 두려움이 설렘보다 컷다. 순례길에 순교할 수도 있다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하지만 라호르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방탄조끼를 입은 채 무장한 파키스탄 군인들이 순례단 차량 호위에 나섰다. 우리 차량 앞뒤로 무장 장갑차가, 그리고 그 장갑차 앞에는 경찰차가 좌우 남북을 방어하고 있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 파키스탄이 승복 차림의 스님과 재가 불자 일행을 국빈급으로 영접하다니 두려움은 잠시 묻고 놀라움이 앞섰다. 떠나기 전 파키스탄 연방정부와 간다라지방 주 정부측에 2001년 아프카니스탄쪽 바이만 대불 폭파 이후 간다라지역 불교유산 보존상태, 파키스탄과 불교 교류 부활 가능성, 종교교류를 통한 세계평화 실천 가능성 등이 사전 논의했던 만큼 파키스탄 정부는 순례단을 극진히 영접했다. 여기에는 장군 출신 불자인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과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룸메이트 출신의 파키스탄 퇴역 장군들이 나서서 안전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았다. 한참 후배로 보이는 현역 사단장은 육상이 위험하게 느껴진다면 헬리콥터를 지원하겠다고까지 나설 만큼 종교를 뛰어넘는 순례단에 대한 예를 다했다.

순례단을 현지에서 안내한 파키스탄 파티마진나 여자대학교 초빙교수이자 간다라 문화예술협회 사무총장인 박교순 교수도 아낌없는 현지 소개에 헌신을 다했다.

현지 순례길에서 보고 들었던 간다라의 어원적 의미는 향기로운 땅이다. 간다라 고대 수도였던 페샤와르엔 카불강과 스와트 강, 인더스강이 흐르고 힌두쿠시 산맥의 지류인 산들에 둘러싸고 있어 간다라가 지형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신라 혜초 스님이나 중국 현장 스님도 간다라를 순례후 남긴 여행문에서 다양한 꽃과 과일, 곡식들이 많이 나는 따뜻한 기후를 지닌 지역이라고 기록했다. 고대사가 찬란했던 곳이라는 기록들이다. 간다라는 페르시아, 로마, 그리고 중앙아시아, 인도 내륙, 중국을 잇는 교통의 관문이었다.

 

대왕도 장군도 스님도 간다라 길 넘나들어

불교가 왕성했던 시절에는 간다라의 수도이면서 중심부인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카이버패스 고개를 넘어 아프카니스탄과 이란을 거쳐 그리스, 로마로 통했고, 동남쪽으로는 인더스강을 지나 인도 내륙까지 이른다. 이 길을 통해 알렉산더 대왕이 탁실라에 진입했고 여기서 충분한 휴식과 사기를 충전한 후 인도 내륙을 정복하고자 했다. 북서쪽으로는 힌두쿠시 산맥, 아래로는 스와트와 치트랄 지역인 이곳에서 힌두쿠시 산을 넘으면 중앙아시아 지역의 타클라마칸 사막 지대와 동쪽으로 파미르 고원을 지나 중국에 이른다. 북동쪽으로는 카라코람 히말라야 산맥 아래 위치한 길기트, 훈자지역이 있다. 이 길은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 장군이 8세기 중엽인 747~753년에 들어온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스카르두와 카슈미르에 이르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티베트다.

간다라가 역사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왕(기원전 522~486)의 비문이다. 간다라는 인도 대륙을 처음으로 통합한 찬드라 굽타의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322)에 의해 지배받으면서 찬드라 굽타의 손자이자 3대 왕인 아소카 대왕(기원전 272~237)에 의해 간다라에 불교가 전파된다. 마우리아 왕조는 아소카 대왕이 죽은 이후 멸망하면서 간다라는 다시 그리스계인 박트리아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리스 왕으로는 처음으로 불교에 귀의해 유명한 메난드로스 왕(기원전 163~150)은 현 시알코트에 수도를 정하면서 펀자브 지역까지 다스렸다. 여기서 젊은 불교 철학자인 나가세나(Nagasena)와 종교적인 토론을 벌여 불교에 귀의하게 해서 남긴 불전이 바로 밀란다왕문경이다.

간다라에서 처음으로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게 사카족이라고 학계에서는 말하고 있는데, 이는 칠라스의 바위에 새겨진 명문과 부처상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잘랄라바드 근처에서 발견된 비마란 사리함에 새겨진 헬레니즘 풍의 부처님상에서 찾고 있다. 박교순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간다라 불상 조각과 불경은 기원후 2~3세기인 쿠샨 왕조 때 전성기를 이룬다.

쿠샨 왕조에서도 카니시카 왕 때 불교와 불교미술이 전성기를 맞는다. 이는 고고학적으로 지금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간다라 불상 조각들이 쿠샨 왕조 시대 카니시카 왕 때 처음으로 부처님을 동전에 새긴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불교미술품은 당시 간다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토착신앙과,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인도의 힌두교, 그리스, 로마신화 등이 불교와 만나 어떻게 간다라에서 꽃을 피워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됐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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