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불상 전한 ‘마라난타’ 찾아나선 순례길
우리 순례단 일행은 20여 시간 만에 파키스탄 간다라지역 순례길의 첫 기착지로써 부처님의 전생 몸 보시 일화담이 서린 펀자브주의 라호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라호르는 부처님의 고행상 원형이 보존된 곳이다. 순례단 일행을 맞은 펀자브주 주지사는 한국의 불자 순례단을 극진하게 맞아줬다. 한국 불자들의 파키스탄 방문을 기회로 두 나라의 문호가 더 넓게 열리고 문화교류가 더 활발하게 이어지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에 와서 왕실에 전했던 말처럼 느껴졌다. 이슬람국가인 파키스탄 주 정부 지사가 한국불교 순례단에 건넨 외교적 제스처라고 느껴졌지만 이 나라의 고대사를 돌이켜볼 때 그냥 한 말은 아니라고 여겼다.
중국의 불교경전에도 간다라는 스님들의 고국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고승전은 간다라지역을 최고의 불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특히 스님들의 성지 순례 최종 목적은 부처님의 사리가 있는 간다라 유적을 보고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간다라는 중국에 불교를 전파한 스님들의 본고장이라는 뜻이다.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고 불경을 번역한 대부분의 스님들이 거의 간다라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법현 스님에 따르면 간다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많은 전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몸 보시로 희생을 한 전생의 장소가 네 군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몸 보시한 그 자리에 아소카 왕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필자는 그 네 곳을 중심으로 간다라 불교유적지 순례길에 따라나선 것이다.
접견을 마친 순례단 일행은 라호르 박물관을 찾았다. 라호르는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되기 이전 문화 중심지였다. 영국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간다라 불상들은 이곳 라호르 박물관에 봉안됐다. 이곳에 부처님 고행상 원본이 유리함에 모셔져 있었다. 일본 전 총리였던 나카소네가 이곳을 방문해 고행상을 본 뒤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파키스탄 대외부채 384억 달러를 갚아 줄 테니 일본에 영구 전시하게 해달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순례단 일행에 함께한 민희식 전 한양대 교수의 설명과 함께 박물관 불상에 대한 감상이 이어졌다. 민희식 교수는 파키스탄 정부에서 자국의 국사편찬 위원으로 위촉했던 분으로 파키스탄 고대사에 밝았다. 파키스탄 간다라 지역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많은 전생 일화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몸을 보시한 곳이 네 곳이나 있다. 아소카 왕은 그 네 곳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첫 번째 탑이 있는 곳은 부처님이 전생에 마하사트바(Mahasattva) 왕자였을 때 호랑이가 새끼를 낳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어 가는 것을 불쌍히 여겨 자기 몸을 찔러 피를 먹였는데 오히려 호랑이가 그를 잡아 먹었다는 곳이다. 이곳은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남동쪽으로 40㎞에 있는 만키알라(Mankiala) 탑이다.
두 번째 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찬드라프라바(Chandraprabha) 왕이었을 때 그의 머리를 요구하는 브라만에게 머리를 잘라 준 곳이다. 이곳은 탁실라에 있는 발라(Bhalla)탑으로 추정된다. 이곳을 찾은 현장 스님의 기록에 따르면 이 탑에서 제를 지내는 날이 되면 가끔 천상의 꽃이 뿌려졌다고 한다. 또 밝은 빛이 번쩍이고 천상의 음악이 들렸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악질 문둥병에 걸린 여인이 몰래 탑에 와서 참회하는 동안 그 주변 뜰에 더러운 오물들이 있는 것을 보고 깨끗하게 주변을 청소한 뒤 향과 꽃을 뿌리며 청련화를 따다가 땅에 갈았다. 그랬더니 문둥병이 낫고 외모는 전보다 아름답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는 청련화의 향기가 났다는 것이다.
이 탑이 있는 탁실라는 아소카 왕이 부처님 입멸 후 여덟 개 왕국으로 사리를 분배하여 세운 불탑을 열어 재분배하여 84,000개의 불탑을 세웠던 곳이기도 하다. 탑들의 이름이 다마라지카(Dharmarjika)탑이다. 다마라지카(Dharmarjika)라는 어원은 다르마(Dharma), 즉 우주의 질서와 법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고, 라자(Raja)는 왕을 뜻한다고 한다. 따라서 다마라지카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가 봉헌된 곳으로 부처님 육신과 말씀, 그 자체가 함께 존재하는 불법 왕의 탑으로 해석된다. 아소카 왕이 탁실라에 부처님 사리를 가져와 진리의 법을 골고루 이 세상에 나눠야겠다는 원을 세우고 불탑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아소카 왕의 이 같은 발원 덕분인지는 몰라도 당시 탁실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본보기가 되는 각 문명과 종교가 어우러져 화합과 평화를 이루었던 역사적인 곳이었다.
세 번째 장소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시비(Sibi) 왕이었을 때 독수리한테 쫓기는 비둘기를 대신하여 그의 살점을 독수리한테 떼준 곳이다. 이곳은 페샤와르에서 북동쪽으로 135㎞ 커리 부네르(Buner)에 있는 굼바타이(Gumbatai)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네 번째 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수디라(Sudhira) 왕이었을 때 장님인 브라만에게 그의 눈을 빼 주었던 곳이다. 이곳은 페샤와르에서 북동쪽으로 28㎞ 떨어진 차사드(Chrsada) 지역의 발라 히사(Bala Hissar)로 추정된다.
라호르박물관은 지난 1864년 펀자브주 박람회를 마치고, 1866년 그 자리에 최초로 박물관을 연 곳이다. 라호르박물관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유물을 전시된 장식물, 그리고 그리스 박트리아 시대 유물, 티베트와 네팔의 작품까지 다양하게 보존하고 있었다. 특히 불교전시실에는 간다라 지방에서 발굴된 불상, 불교 조각 중 탁실라에서 옮겨온 거의 원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2m 높이의 스투파가 전시돼 있었다. 라호르를 뒤로 하고 우리 순례단 일행은 마라난타 스님의 고향 초타라호르를 향해 다음 순례지로 향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몸 보시했다는 곳 중 하나인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길은 삼엄했다. 라호르에서 버스로 6시간 동안 중무장한 경호 차량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우리 도착 전에 테러조직이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대사관에 폭탄테러를 시도했다는 소식이 순례단을 얼어붙게 했다. 1년 전 미국 특수부대가 테러조직인 알카에다 두목 빈 라덴을 사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파키스탄 한국 대사는 순례길이 위험하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는지 여러 차례 강권하다시피 했다. 순례단 일행은 대사 주재 만찬 이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순례길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를 놓고 투표를 하기로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우리를 초청한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가 나섰다. 파키스탄 정부가 순례단 안전을 보장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가운데 치른 투표에서 한 명만 돌아가겠다는 결과가 나와 순례단은 순례길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