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1. 눈 시림

"오빠 나도 이제 엄마가 되었어요"

"그래, 수고했다 축하한다"

동생의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나를 보며 동생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42년 동안 살아오면서 동생이 그토록 밝은 표정으로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산모도 아이도 건강했다.

아영이가 태어나던 날, 2005125일의 영광 날씨는 금방이라도 진눈깨비가 쏟아질 것만 같이 잔뜩 찌푸렸다.

개마고원, 울릉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다설 지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눈이라도 잔뜩 뿌려주려는 듯 ...

다음 날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동생은 만산의 산모답지 않게 건강했고,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

아기가 보고 싶었다.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동생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일러두고 병원에서 나와 몇 몇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고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어서 마치 하얀 눈 속에 갇힌 페테르스크 부르크의 우울과 고독을 묘사 한 톨스토이의 소설 속 배경을 연상케 했다.

나의 전화를 받고 나온 선·후배들과 마주 앉은 자리.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아 한 턱 쏠테니 점심 식사와 함께 소주도 한 잔 합시다."

그렇게 첫 잔을 따르고 건배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나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형님! 빨리 병원으로 좀 와보셔요. 산모가 이상해요"

매제의 전화를 받고,

동생이 출산을 한 병원으로 달려가보니 산모를 응급실에 눕힌 채 젊은 의사 2명이 안절부절 하며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야?"

"산모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갑자기 쓰러졌어요"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도 건강하고 밝은 표정이었는데 의식을 잃다니., .

불안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응급실 유리창 너머로 의사들의 응급조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별 진전이 없었다.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좋지않은 생각들이 나의 뇌리를 괴롭혔다.

그런 기다림의 어느 한 순간이섰다.

응급실 옆에 있는 신생아실에서 느닷없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껐 순하게 잘 자고 있던 아기가 갑자기 까무러치듯 울음을 떠뜨린 것이다.

내게 그 울음은 울음이 아니라 어떤 절규처럼 들려왔다.

순간,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며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아기의 울음소리를 통해 느껴지던 나의 직감을 부정하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응급실을 들여다 보았다.

의사들은 산모에게 인공호흡기를 꽂고 무순 극약처방제인 듯 한, 더욱 강도 높은 주사를 찔러대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긴장된 시간이 흘렀지만 혹시나 했던 나의 기대감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야 이새끼들아 그만두지 못해."

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 때서야 의사들도 이마의 땀을 훔치며 산모의 죽음을 인정했다.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는 그 때까지도 단말마 적인 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동생이 출산을 한 지 정확히 26시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자 나이 마흔 두살에 얻은 그 가슴 벅찬 행복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동생은 모진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것일까?

사람이 뜬 눈으로 직시할 수 없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그것은 하늘의 태양과 죽음이다.

죽음도 일반적인 자연사가 아닌,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 내 눈 앞에 현실로 보여질 때, 그 참담함을 차마 뜬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갓 태어난 생명 하나 이 세상에 던져놓고 그 따스한 체온과 가느다란 숨결을 가슴에 안은 채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산모(동생)의 죽음을 지켜보며 나의 마음은 오래 전 그 바다에서 처음으로 보고 느꼈던 어떤 죽음의 장면이 뇌리 속에 오버랩되면서 다시 한 번 눈이 시리고 목덜미가 뻐근해졌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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