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키운 양 한림
영광군 불갑면 방마리 방뫼(芳山) 마을은 지금은 수은 강항(姜沆) 선생의 내산서원이 들어서 있다. 내산서원은 영광읍에서 불갑사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으며 불갑저수지의 정 남쪽에 솟아 있는 방마산 줄기의 남쪽에 위치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아늑한 동남향이어서 내산서원 주차장에 들어서면 마치 고향마을에 들어서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이 내산서원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인 고려 중엽에는 이곳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 방뫼였으며 지금도 방뫼라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
고려 중엽에 이 방뫼 마을에 양씨 성을 가진 아이가 살고 있었다. 양 도령(도련님)네는 살림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신분이 양반이었고 홀어머니가 어지신 분이었던지 바느질 품을 팔아 일곱 살인 양 소년을 방마산 골짜기에 있는 서당에 보냈다. 소년은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어린 나이에 먼 시오리 산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당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서당에서 돌아오는 고갯길 마루에 올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고 있는데 낚싯대를 맨 노인이 불갑천 쪽에서 올라오더니 그물 구덕을 내려놓고 바위에 걸터앉는다. 양 도령이 그물 구덕을 들여다보니 노란 잉어 한 마리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깜빡이며 숨을 헐떡이고 있지 않은가. 소년이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가까스로 숨을 헐떡거리는 잉어의 처량한 모습은 소년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좀 살려주세요. 도련님! 제발 이 불쌍한 잉어 좀 살려주세요.”
하고 구슬프게 애원한다. 금잉어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소년의 호주머니에는 며칠 전 삼촌이 심부름을 시키고 준 돈 한 잎이 들어있다. 동전을 만지작거리던 소년은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 저 노란 잉어 저에게 파세요.”
“저 금잉어는 부잣집 마나님들이 몸보신하는 비싼 잉어다. 그런데 어린 네가 무슨 돈이 있어 살 수 있겠느냐?”
“저 돈 있어요. 자 보셔요.”
하고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 한 잎을 꺼내어 영감님께 드린다. 영감님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껄껄 웃더니
“허허! 고놈 참, 마음이 착하구나. 네 눈에는 잉어가 그리도 불쌍하게 보이느냐? 돈은 필요 없다. 네 마음이 갸륵하여 주는 것이니 네 알아서 하거라.”
하고 구덕에서 잉어를 꺼내 소년에게 준다. 소년은 마다하는 영감님 손에 동전을 놓고 쏜살같이 고개를 내려왔다. 고개 중턱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바위틈에서 솟아 나온 물이라 맑고 시원하여 나무꾼들이나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고 연못 가에서 쉬어가는 쉼터이다. 소년은 연못 물에 잉어를 살그머니 넣으며
“금잉어야! 잘 살아라. 날마다 너를 보러 올게. 내가 부르면 꼭 나와!”
하고 놓아 주었다. 잉어는 죽은 듯이 잠시 멈추어 있더니 뻐끔뻐끔 물을 마신 후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어 인사를 하고 연못 속으로 사라진다.
다음날부터 소년은 서당에 오가며 연못에 이르러
“금잉어야! 나 왔다. 잘 있었니?”
하고 부르면 잉어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뻐끔뻐끔 인사를 하였다. 소년이 호주머니에서 곡식 가루를 꺼내 뿌려주면 잉어는 잽싸게 받아먹곤 하였다. 그런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나 소년이 열 살이 되는 생일날 다음부터는 잉어를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세월이 어느새 6년이 더 흘러 소년의 나이도 16세가 되어 다음 달에 있는 과거를 보기 위해 3일 후에는 개성으로 떠나야 한다. 그날 밤 꿈에 황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나는 그대가 살려준 금잉어요. 나도 3일 후에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오. 내가 승천하기 이틀 전에 그대에게 내 몸을 보여드릴 테니 내일 정오에 연못으로 오시오.”
말하고 사라진다. 양 도령은 이튿날 정오에 연못으로 가 연못 속을 들여다보았다. 오시 정각이 되자 연못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누런 황룡의 꼬리가 슬그머니 솟아 올라온다. 그러더니 점점 몸통이 드러나니 찬란한 황금빛 비늘에 눈부셔서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어질어질하여 도저히 더는 바라볼 수 없게 된 양 도령은 저절로 눈이 감기며
“그만!”
하고 외치니 용은 사라지고 잔잔한 연못은 맑기 그지없다. 그날 밤 꿈에 또 황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그대가 만약 내 머리까지 보았다면 그대는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나 내 몸통까지만 보았으니 과거에 급제하여 정승은 될 것이요. 그대가 높은 벼슬에 오르면 나를 살려준 것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피기 바라오.”
하고 사라졌다. 양 도령은 용의 말대로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이 한림학사에 올라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데 큰 몫을 했다고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