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일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별로 상큼하지 않은 기억의 조각 몇 장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이 현상은 유쾌하지 않다. 특히 올해처럼 갑자기 이상한 나라로 흘러 들어가는 공간을 발견한 것처럼 과거와 비정상적인 조우를 해야만 하는 경험은 흔하지 않기에 더욱 강한 기억을 만들어 낸다. 현실과 경험이 뒤얽힌 기이한 경험이 해를 넘기며 장을 덮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현실은 전혀 반대로 가고 있다. 지독한 진행형이다. 현재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운영이 이렇게 비현실적이었던 경험 역시 처음이다. 시간은 단락을 짓지 않지만, 사람은 굳이 일 년씩 단락을 지으며 넘기려 한다. 뭔가 아쉬움을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해를 맞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겨운 정치놀이는 전환점을 찾기는커녕 얄밉게 이어지고 있다. 본인에겐 정치요 대통령 혹은 영부인의 권한 행사겠지만 당하는 대부분 국민에겐 정신적 고통이 되고 있음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성을 소유한 이 시대 최고위직에서 국민의 지침대 노릇을 하는 지도자가 모를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은 그래서 더욱 절망적이다. 최근 대통령 특별사면이 있었다. 일반 사면은 음주 운전자 전체를 풀어 주는 것처럼 범죄 일반을 사면해주는 것에 비해 특별사면은 대통령이 콕 집어서 사람을 사면해준다는 것이 다르다. 그래서 정치범과 경제법이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무려 13백여 명이란다. 이 가운데 경제 파렴치범인 MB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대통령 자신이 검찰 현직 당시 잡아넣었던 국정농단 범죄 당사자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촛불의 이름으로 잡아넣었던 국정농단 범죄자들을 다시 대통령이 되어 사면해준 것이니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서로 손을 잡고 협치를 했다. 더욱 이상한 현상은 그의 지지자들이지만 이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어 더 다루진 않는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북에서 넘어온 무인기 사태지만 언론은 그다지 심하게 다루지 않는 형국이다. 서울 하늘을 무려 7시간이나 돌아다니고 촬영을 했는데 전혀 제재를 못 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지만 정작 최고 지도자께선 강아지와 놀고 있었다. 태평세월이다. 그리고 이미 4년 전에 만들어진 드론부대를 창설하겠다고도 했다. 모르면 보좌진에게 물어야 함에도 항상 무지한 자신의 지식을 먼저 선빵으로 날려 버린다. 그날 하늘에선 북의 무인기가 사진을 찍고 지상에선 대통령실에서 수십 장의 강아지 사진을 촬영해 밖으로 유출하며 홍보전을 폈다. 가장된 가식의 평화로 보이는 게 나만의 느낌일까. 그 사이 무인기의 한 대는 다시 북으로 넘어가고 넉 대는 사라져버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주어진 80억 벌금도 아직 납부하지 않은 상태로 자연스럽게 사면과 함께 없어졌다. 반면 한명숙 전 총리는 5억이라는 추징금을 아직 납부하지 못해 복권되지 않았다. 주위 말로는 정말 돈이 없다고 한다. 편파를 벗어난 편파다. 신년을 맞으면서 정말 생각하기 싫은 일이지만 오히려 무거운 기억으로 남아 신구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희망도 좋고 새로운 계획도 좋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올 한 해 정말 힘들 거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IMF를 뛰어넘는 아픔을 견뎌야 할 것이다. 수출 역사에서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지 단 일 년 만에 제자리 성장이라는 믿기지 않는 결과를 봐야 할 것이고 풍족과 절망의 요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 정부 출범 단 7개월 만에 남긴 업적은 적개심 어린 수사로 만신창이가 된 정치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의와 법치를 내세워 약자의 정의와 법치를 유린하고 있는 현상에서 새해는 그대로 절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