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고봉주 영광군가족센터장·영광신문 편집위원

친일파가 된 독립군의 아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기 전에 가족들을 중국 연해주에 마련한 임시 거처로 이주시켰는데 둘째 아들 안준생이 네 살 때였다.

거사 후, 온 가족이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일본군의 눈을 피해 고단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안준생의 형 안분도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과자를 주고 갔는데 이걸 받아먹은 형이 죽고 말았다.

이처럼 항상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안준생에게 조선총독부 사람이 찾아와 협박을 하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이또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 안중근의 일을 사죄하면 평생 편히 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가난과 죽음의 두려움에 떨던 안준생은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총독부는 안중근의 아들이 이또의 아들에게 사죄하며 두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뒤 안준생은 미나미 총독의 양자가 되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과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눈물의 화해를 외치고 다녔는데 조선사람들은 그를 보고 호랑이 아비에 개자식이라며 침을 뱉었으며 김구주석은 해방이 되면 반드시 죽음으로써 응징해야 할 인물로 안준생을 꼽았다.

일본에게 받은 막대한 상금으로 상해에서 호화로운 가정을 꾸렸던 그는 해방이 되자 처자식을 미국으로 보내고 홀로 귀국을 했는데 당시 폐결핵을 앓고 있던 그에게 의사들은 민족의 배신자라며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일본에게 이용 당하고 민족의 영웅었던 아버지 마저 배신한 안준생은 죄인처럼 숨어 지내다 폐결핵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독립군이 된 친일파의 손자

박제순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 당시 충청감사로 농민군을 무참히 진압했으며 1905년에는 외부대신으로 이완용과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과 더불어 `을사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을사오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박제순의 친손자 박승유가 온갖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조부의 친일행각을 속죄하기 위해 광복군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대 법대의 전신인 경성법학전문대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주선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던 박제순의 손자 박승유는 중국 절강성 의오현에 주둔 중인 횡정부대에 배속됐다.

그러나 할아버지 박제순이 나라의 주권을 일본에 넘기고 아버지마저 친일관료로 활동하는데 심한 자괴감을 느꼈던 그는 입대 한 달 만에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에 들어갔다.

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된 그는 중국 무석과 무호, 남경 등지를 돌며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는 한편 대일 선전공작활동을 벌였다.

선대의 친일행각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어려서부터 음악에 심취했으며 출세가 보장되는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고시 응시를 거부했다고 한다.

또 조부의 친일행각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 "차라리 자결하지 왜 구차하게 살아남아 후손들을 욕되게 하느냐."며 해방 때까지 박씨 성을 거부하고 가명을 쓰며 활동했다.

박승유는 해방 후에는 조선오페라협회 간사로 일하면서 음악활동을 계속했으며 6.25전쟁 기간에는 자원입대해 국방부 정훈부 합창단원으로 전국 야전 부대를 돌며 위문공연을 벌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친일파의 후손인 박승유에게 광복군의 공훈을 인정하여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그리고 불구부정(不垢不淨)

불구부정이란 불교경전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 사물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법정스님은 강론에서 차를 달인 찻물은 깨끗한 것이지만 그 차를 마시고 나오는 오줌은 더러운 것이 되고 더러운 오줌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우는 도라지는 깨끗한 것이 되니 무엇이 더럽다 하고 또 무엇을 깨끗하다 할 것인가?”라고 설파했다.

자기들만이 깨끗하고 옳다며 세상만사를 그들만의 잣대로 재단하고 판단해 버리는 요즘의 정치가 참으로 안타깝다.

영웅의 아들 안준생과 을사오적의 손자 박승유, 누구를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수 있으며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영웅의 아들은 개 같은 삶을 살지만 변절자들의 자식은 성공하고,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재앙이었습니다. 나는 나라에는 재앙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영웅입니다.”

안중근의사의 아들 안준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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