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같이 올라온 일행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말 한 뒤 나는 곧장 오던 길을 되짚어갔다.

최소한 현 위치에서부터 마틸다에게 문자를 보냈던 그곳 사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 분명했다.

거칠고 험난한 숲속을 워낙 많이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넓고 복잡한 산속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못 찾으면 어쩌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옷을 입은 채 물에서 금방 나온 생쥐 꼴이 되어있었다.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고 이제는 목이 타는 것보다 더 심하게 마음마저 타들어 갔다.

어렵게 어렵게 기억을 더듬으며 오던 길을 되짚어서 처음 산을 오르던 대신리 쪽 산의 입구까지 가보았으나 마틸다(핸드폰)”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시 그 등산로까지 올라가 보아도 없었다.

없는 게 아니라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큰일 났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단 하산을 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다른 쪽 산을 답사하고 내려온 팀들까지 모두가 대신리 모정에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핸드폰 찾았어요?”

아니, 못 찾았어

그까짓 핸드폰 하나 찾으려고 뭐 그리 산을 헤매고 다니요? 새로 하나 사면 되지.”

아니야 그 속에 나의 소중한 관계들이 다 들어있어. 핸드폰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그 관계 들을 찾으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마틸다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숙하면서도 그 짧은 단발머리에서 풍겨오는 청순함과 순수의 이미지 하며 가족을 살해한 살인 청부업자들을 상대로 복수심을 불태우는 당돌함, 그리고 뜨거운 가족애와 인간애, 파트너인 레옹이 죽은 후에도 하잘것없는 평범한 화분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시간을 상징하는 그 화분을 화신(化身)처럼 가슴에 안고 내일을 향해 걸어가던 그 쓸쓸함과 우수가 묻어나던 표정들.

그런 마틸다를 나는 오늘 산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친구의 핸드폰을 빌렸다.

물 한 병을 챙겨 들고 처음 산을 오르던 그곳부터 다시 오전의 행적을 따라나섰다.

다행히도 내 마틸다(핸드폰)”의 수신 방식이 벨 소리로 되어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전화를 걸면 숲속 어딘 가에서는 분명히 마틸다의 대답이 들려올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이 있어서다.

오전 산행에서 처음 휴식을 취하며 마틸다에게 문자를 보냈던 그 지점인 계곡 쪽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마틸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오른쪽 능선 쪽에서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옮겨가서 통화키를 누르니 이번엔 아예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다시 계곡 쪽으로 가서 들으니 분명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는 마치 천년 세월의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듯 아련하고 희미했다.

좀 더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니 이번에 여러 가지 방해꾼들이 나타나서 괴롭힌다.

평소에는 정을 다해 노래를 불러주던 정다운 산새들의 노래가 지금은 원망스럽고 나뭇잎 스치는 바람 소리도 반갑지가 않았다.

그렇게 소리의 주변을 오가며 아무리 찾으려 해도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다.

만약에 배터리라도 다 떨어지면 영영 찾을 수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한 생각만이 앞선다.

아영이 수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는 또 얼마나 초조해하고 있을까?”

마틸다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려오는데 도대체 어느 쪽인지 분별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환청을 듣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통화키를 눌렀다.

발신음을 듣지 않으려고 친구 핸드폰을 저만치 놓아두고 떨어져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막았다.

내 간절함이 하늘에 미치면 분명히 들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귀를 귀울이니 마틸다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엎어지고 넘어지며 그 소리를 따라갔다.

한참을 그렇게 갔는데 갑자기 소리가 뚝 끊어졌다.

저만치 놓아둔 채 나의 폰 번호로 발신 통화 키를 눌러놓은 친구 핸드폰의 발신 시간이 초과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엔 마틸다의 소리가 끊긴 그 자리에 친구 핸드폰을 가져와서 통화키를 눌렀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려는 순간,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도 애타게 찾아 헤맸던 마틸다가 바로 내 발 옆에서 혼자 울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 있어서 내일의 희망을 향해 달려가는 마틸타는 여러 가지 모습과 다양한 의미로 존재한다.

사랑하는 막내딸 아영이를 비롯한 아들과 딸들, 천사라는 말 밖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착하고 영리한 아내, 지금은 아영이를 당신의 외손녀가 아닌 친손녀로 인정하고 할머니로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나의 어머니 그 외 나와의 모든 관계 속에 있는 여러 타인과 자연 속의 사물들. 모두가 나에겐 소중한 마틸다 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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