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프랑스 시인 아르트르 랭보는 열여섯의 나이에 그렇게 울부짖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 세상에 상처 없는 삶이,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상처 하나 없이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온전할 수 있으며, 슬픔과 아픔 없이 어떻게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여보시오 어사또님 본관 사또 괄세 마시오. 예로부터 충효 열녀가 고생 없이 누가 있소?”
이몽룡이 어사 출도 하여 변사또를 단죄 하려 할 때 춘향이 어사또를 향해 변사또의 죄를 용서하라는 판소리 춘향전 사설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지 않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슬픈 일 아픈 일을 겪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을 통해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확인 할 수 있고, 아픈 상처와 견딜 수 없는 슬픔의 과정을 거쳐야만 소중한 행복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에 기쁨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아픔이 없는 가슴 속에는 강인함과 행복이 깃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동생의 그 비극적인 죽음이 나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고 슬픔이었다면 그 동생의 죽음으로 나에게 선물해준 내 막내 딸 아영이는 지금 나 뿐만이 아닌 우리 가족 모두의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행복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수많은 상처와 견디기 힘들었던 사건들, 그러나 그런 일들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하나 하나 이겨내던 그 과정이야말로 경험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며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은 그냥 주어진 것도 아니며 아무데나 널려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도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은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각자의 몫인 것이다.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누구한테도 특별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도 있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것을 자기 것으로 추스르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어느 햇살 맑은 가을날의 저녁 무렵-
나는 이제 더 이상의 평안과 안락한 삶 만을 꿈꾸지 않는다.
어느 햇살 맑은 가을날의 저녁노을이 칠산바다 수평선 위로 곱게 물들어 가던 그 시간.
오랜만에 차분한 마음으로 찾은 두우리 그 바닷가에서 나에게 생의 기쁨과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방법을, 자신의 실천적 삶을 통해 가르쳐준 아내를 향해 난 긴 독백을 보냈다.
두우리 연가(戀歌)
마파람 끝자락이 늦바람으로 돌아치면
잠을 자던 숭어 떼가 수평선을 뒤흔들고,
막혀있던 갯벌이 숨 눈을 뜨니
너와 나
맛 쇠 먹음 멀큼해진 사랑으로 달려가자
저 백 바위 가슴에서 부서지자.
서쪽 먼 하늘 끝 철새가 휘돌고 간 자리
검붉은 저녁 놀 가슴 저밀 때
너와 나
갯바람 타고 흐르는 칠 산 바다 혼 불이 되었다가
석삼년 가뭄 끝에 울음 우는
천둥이 되자 바람이 되자 파도가 되자.
늦은 밤 안방을 들여다보니 아영이도 작은 딸도 아내도 혼곤한 잠 속에 빠져있는데 아영이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다리 한 쪽을 지 엄마의 배 위에 턱 올려놓은 채 편안하다.
곧 새벽이 되려는지 마당가에 서있는 감나무의 무성한 잎새를 스치는 한줄기 바람 소리가 청아하다. 나도 이제 눈 좀 붙여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