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현대 사회를 명료하게 표현한다면 전문 시대이다. 점점 세분되어 가는 전공과 직업은 먹고 사는 방법을 헤아릴 수 없이 늘려 놓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한 과정으로 묶여있던 작업이 세부적으로 분열되고 있다. 사회의 또 다른 형태로의 변환이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실과별로 수행하는 일의 머리를 찾아서 실과 이름을 정하고 공무를 행한다. 공무원은 대부분 행정이지만 전공을 한 사람도 많다. 보건과 건축, 토목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각 실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물론 전공대로 배치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위 뺑뺑이 인사로 인한 전공자 붙박이 근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실과에는 전공자가 민원을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때로는 전문가를 배치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전문가의 위치는 거의 계약직이라는 한계를 갖거나 기술을 바탕으로 한 별정직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행정기관에서 일을 보기 위해선 관계법이나 조례 혹은 시행령 등을 숙지하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이건 실제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이다. 민원을 대하는 공무원이 해당 업무를 정확히 꿰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해에 두 번을 움직이는 내부 인사도 문제지만 한 자리에서 2년 이상을 근무하기 힘든 인사 체계는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업무를 한자리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언 때문일 것이다. 전공자가 없는 부서 혹은 실과에서 그나마 업무에 숙련된 공무원을 배치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치고는 치졸하다. 고인 물의 부패 방지를 위해 민원의 전문성을 버려야 하는 관습이라면 경중이 맞지 않는다. 관청 전체가 부패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감시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급자와 상급 기관이 있고 각종 감사가 있다. 자격을 보유한 전공자가 일반 행정 직원과 섞여 돌아가는 인사 체계는 아주 비효율적이다. 물건에도 쓰임이 있듯이 사람 역시 쓰임이 다르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인요한 의과대학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모든 실권을 넘치게 주겠다고도 했다. 여당의 혁신을 의사의 메스에 맡긴 것이다. 아무리 봐도 생뚱맞다. 정치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의사를 정치 혁신을 위한 자리에 추대한 여당이나, 그렇다고 덥석 제의를 수락하고 받아든 인요한 교수나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말단에서 민원을 상대하는 공무원도 쓰임이 다르고 전공이 다른데 하물며 어지러운 여당을 바로잡겠다는 혁신위의 위원장을 의사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물건에도 쓰임이 있다. 더욱이 사람은 쓰임에 따라 능력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인요한 교수는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직무를 맡은 것일까. 답이 없는 물음이다. 단지 희생 없이는 변화가 안 된다. 아내와 아이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라는 과거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을 인용한 발언만 떠돌고 있다. 아내와 아이는 곧 자신의 분이니 나 말고는 모두 바꿔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자신만 옳다는 이상한 논리가 숨어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메타포(metaphor)를 품고 있는 말이겠지만 공인으로서의 발언이란 모든 오해의 소지를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고 보면 실수임에는 틀림없다. 정치의 뒷면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받아들인 대가는 클 것이다. 그가 목표로 삼은 통합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질까. 순진무구한 교수의 앞길이 걱정스럽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공명에 노후 안식을 판 노학자가 손에 쥘 명예는 결코 없을 것이다. 영광군 공무원의 관습적 인사 혁신만큼이나 가능성이 없는 인요한 교수의 국민의힘 통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 교수는 스스로 자신의 쓰임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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