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

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
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

필자가 영광신문에서 마음의 창이란 코너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올해 20년이 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신 영광신문과 독자들에게 감사하며 이 뜻깊은 해에 본인은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려 한다. 바로 개화기 때 헌신했던 우리 지역의 인물을 찾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복잡다단한 인물들을 솔직하게 다루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교훈 삼아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함에 있다.

조선말 호남지역에서 1892년부터 1984년까지 190명의 선교사가 활동하였고 이들을 통해서 근대 교육, 의료, 문화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고, 이 시기에 쓰임받은 인물들은 분명 시대를 조명하는 선각자들이 틀림없다. 개화 초기에 광주지역을 비롯한 호남지역은 미국의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 복음이 전래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나갔다. 본고에서 첫 번째로 다룰 인물은 최흥종이다.

개화기 광주 최초의 영적지도자, 오방 최흥종. 한 평생을 한센병(나병)퇴치와 빈민구제, 독립운동, 선교활동, 교육활동 등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광주의 정신적 지주이자 근대 광주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광주지회장, 신간회 광주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목사였는데 광주지역의 기독교 최초의 성도이고 세례교인, 집사, 장로, 목사, 선교사이기도 했으며 광주 YMCA 설립자이기도 하다. 본관은 탐진(耽津), 호는 오방(五放), 본명은 최영종(崔泳琮)이다. 1907년 세례를 받고 흥종(興宗)’으로 개명하였다.

최흥종(이하 최흥종 목사)을 통하여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가져야 하는 위치를 '복음적'이라는 단어와 '사회봉사'라는 단어로 연결시켜 보면 더 의미가 있다. 최흥종 목사는 조선조 말기(1880)에 태어나서 1905년에 순검과 1907년에 농공은행 은행원을 거치는 등 어거스틴처럼 출세 지향적 삶을 추구하다가, 1909년 포사이트(Wiley H. Forsythe) 선교사가 임종에 가까운 여자 나환자에게 베푸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행위에 감동을 받고 기독교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으며, 그것도 사회봉사적 삶을 기독교인의 정형으로 파악하였다. 그에게서 기독교인과 교회는 소속된 사회의 일원으로서 예수님의 복음과 삶으로써 사회를 섬기는 봉사자가 될 때에 가장 올바른 정형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출세 지향적 삶을 포기하고 헌신적인 사회 봉사적 삶을 추구하였으며, 이러한 삶이 그에게서는 곧 바로 목회였다.

최흥종 목사가 보여준 복음적-사회봉사적-목회자로서의 삶은 교회발전과 선교에 아주 적합한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가 복음적-사회봉사적-목회자로서 살아감으로써 교권적 목회세계에서는 배척을 당하고, 동시에 주류적인 선교사들과도 교분을 나누지 못하였지만 그의 신앙적 자세는 지역사회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음을 감안할 때, 개신교의 사회봉사적 참여가 시급한 선교의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최흥종 목사에게는 한국의 산하에 대한 농촌사랑과 함께 농업을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정신교육으로 나타났다. 최흥종 목사는 이 사랑을 동포애(同胞愛)로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이 민족을 일깨우기 위한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여성을 일깨우고, 해외에 흩어진 동포들에 대한 선교사를 자청하고, 농촌을 일깨우는 교육에 임하였다.

최흥종 목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미국의 여러 선교단체 및 기독교 단체에게 한국에 "더 많은 학교, 더 많은 전문학교, 그리고 성경교육기관"을 설치할 수 있도록 재정적 협조를 당부하였다. 그리하여 3·1 만세운동 이후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찾아서 일생동안 보람되게 살도록 이끌려 하였다. 최흥종 목사는 1920년대의 혼란과 좌절은 또 다른 시대를 향한 과도기의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둡고 암담한 눈을 높이 떠서 "사상을 고상히 하고 주의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마약에 물들지 않도록 모루히네 방독회를 조직하였으며, 금주와 금연운동, 공창폐지운동 등 사회정화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젊은이들의 정신적 각성을 촉구하였다. 짧은 지면적인 한계로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기도 쉽지 않지만 다음호에 이어서 한번 더 최흥종을 다루려 한다.

최흥종 목사 처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지역과 사회를 섬기는 헌신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지도자로서 올바른 신앙적 가치를 생명 다해 지키며 전수하는 선한 노력이 필요하리라 여겨짐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마땅히 세상의 어려운 곳과 같이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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