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강구현 시인

선원실 가장 높은 쪽에 서서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10년 넘게 고생해 온 노력의 대가를 얻은 배를 제대로 한 번 써보지도 못한 채 한 순간에 잃게 될 상황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에 젖어 있던 우성과 그의 아내는 이제 그 허탈감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뒤바뀌면서 온 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가마미 조선소를 출발 할 때 준비해서 싣고 오던 솥이며 남비 텔레비전 따위가 물에 떠서 둥실둥실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 것은 마치 우성 자신과 아내의 주검처럼 느껴지며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는 아내를 돌아보니 아내는 이미 겁에 질린 채 얼굴이 파래지고 있었다. 우성은 그 순간에도 아내를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지고 아내를 향해 웃으면서 농담을 건넸다.

여보 우리는 참 행복한 부부인 것 같네. 이 세상 어느 부부가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서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죽을 수 있겄는가? 오늘 우리가 죽는다 해도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서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죽는 것이니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 준 축복이라고 생각 허소.”

파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우성의 아내는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이제 우리 새끼들은 어쩌라고, 이제 우리 새끼들은 어쩌라고하면서 말끝을 흐린 채 자신의 죽음보다는 집에 있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그런 울부짖음을 듣고 있자니 마을 앞의 선창가에서 새로 지은 배를 타고 올 엄마 아빠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두 딸과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우성은 곧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러한 우성과 그의 아내의 참담한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는 점점 기울어지면서 뒤집히려 하고 있었다. “여보 당신은 겁먹지 말고 내손을 꼭 잡은 채로 나만 따라 허소."

밀물에 뒤집히는 배의 옆모서리에 간신히 버티고 섰던 우성과 그의 아내는 배가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 잽싸게 발을 옮겨 뒤집힌 배의 밑바닥으로 올라섰다. 배는 뒤집힌 채로 계속 높아지는 수위에 의해 점점 물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지금 배가 가라않고 있는 곳은 썰물이 되어 물이 완전히 빠져나가면 바닥이 드러나는 모랫벌로써 두우리 사람들이 오토바이나 경운기를 타고 와서 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파기도 하는 곳임을 우성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썰물이 될 때까지만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버틴다면 죽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우성은 지금의 위급한 와중에도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 부분을 입고 있던 웃옷을 찢어 물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막아놓았었다.

아직 썰물은 나지 않고 뒤집힌 배의 밑바닥을 딛고 서 있는 우성과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내의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물이 차오를 경우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에 우성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아내의 웃옷을 벗겨 길다랗게 찢은 다음 아내와 자신의 몸을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말을 건네고는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겼다. 아내는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은 계속해서 차오르는데 이제는 거세게 밀려들어오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배의 밑바닥을 딛고 있는 발끝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이었다.

우성의 아내는 이미 발이 동동 들린 채 오송의 목을 끌어안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시피 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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