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오늘부터 제22대 국회의원 사전 투표일이다. 대체로 야당의 승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각 정당은 마지막 힘을 쏟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새롭게 떠오르는 제3지대 정당이다. 이른바 양대 거당의 위성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이탈표를 쓸어 담고 있는 곳으로 조국혁신당이 대표적이다. 넓게는 진보에 속하기에 진보 진영에서는 우려를 표했지만 의외로 시너지 효과를 더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힘을 보탠 것은 여당의 각종 실책과 기이한 행보였지만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특이한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느 정권이든 만족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정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해도 30% 이상은 불만이고 아무리 실정을 해도 30% 이상은 긍정 표를 주기 마련이다. 사람이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보고 싶은 것 외에는 보지 않으며, 관심 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진영에서 진영 논리로만 흐르는 지식은 극히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선택권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단 지성으로 흐르는 선택권의 방향은 언제나 반수 이상의 현실적인 곳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집단 지성은 항시 옳았을까. 물론 아니다. 특히 최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집단 지성의 믿음을 벗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당선인의 아만이다. 자신의 존재에 스스로 놀라고 ‘선민’의 경지에 이른다. 여기서 발생하는 게 전문 용어로 ‘꼴값’이다. 감히 최고의 권력 기관인 국민 앞에서 자신을 ‘베푸는 자’ 위치로 등극시키는 만용을 부리기 시작한다. 최근 여당 대표는 “선거에 나오지 않아도 잘 살지만…”이라는 발언을 했다. 굳이 출마한 이유가 ‘여러분을 위해서 희생해 준다’라는 베푸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패배의 기운이 보이는 선거판 책임론을 벌써 던지는 여당 대표의 얇은 인성에서 설익은 정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국민을 보지 않고 자신의 정치만 소신껏 끌고 나가면 어떻게 될까. 현재의 한국 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번 대통령의 의대 정원 관련 51분 담화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의사 수를 늘리는 이유가 국민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목적으로 한다면 밀어붙이는 뚝심에 앞서 살펴야 하는 것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당장 죽어 나가는 국민이다. 그리고 이 사안의 해결을 위해선 뚝심과 소신이 아니라 소통과 협상 혹은 타협이다. 51분 일방적 담화의 핵심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의사 카르텔의 벽을 자신이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답을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닌, 도서와 비인기 전문의 그리고 소외지역 현황 등을 파악하고 적당한 정책을 먼저 찾는 게 옳지 않을까.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다면 이는 순전히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의 책임이겠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진 않을 거라는 예상이다. 한 위원장은 공공연하게 자신은 잘못이 없음을 외치고 있고, 대통령은 갖가지 선거 리스크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최근 양 진영의 유세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국민의 힘은 ‘범죄자’였고 민주당은 ‘경제 민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야당은 소리를 모아 ‘정권 심판’을, 여당인 국민의 힘은 이재명과 조국을 대상으로 ‘이조 심판’을 외치고 있다. 야당을 향한 ‘심판’이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대파값 파동으로 전 국민을 상대적 박탈감으로 몰아넣는 것도 부족해서 사과와 바나나 등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로 등극을 했다니 이젠 놀랍지도 않다.
범죄자라는 천박한 공격을 받아치지 않고 꿋꿋하게 국민의 민생과 경제의 끈을 놓지 않는 야당이 모처럼 좋아 보인다. 무능한 정권을 심판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국민 투표다. 이를 포기한 사람은 모든 정책에 불만을 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 투표에 참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