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는 우리 선조들이 귀신 중에서도 가장 친근감을 주는 귀신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도깨비는 어느 때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기도 한다. 도깨비의 어리석음 덕분에 부자가 된 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도깨비의 올바른 판단으로 못된 인간을 징벌하기도 하고 도깨비방망이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여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도깨비를 인간보다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어리석지만 따뜻한 신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깨비는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원조자로 여겼었다. 그래서 도깨비 얘기는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다.

영광읍 우평리는 산기슭의 평평한 평지여서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으나 500여 년 전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까닭은 도깨비들이 사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500여 년 전에 한 사람이 가족을 거느리고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가 우평에 이르러 뒷산을 바라보니 황소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앞의 들이 논을 일구어 농사짓기에 좋은 평평한 곳이어서 우평(牛坪)이라 이름 짓고 이곳에 이삿짐 보따리를 풀었다. 사람이 정착하여 살려면 먼저 마실 물이 있어야 하는지라 첫날은 한데 잠을 자고 이튿날부터 연못가에 집짓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둥을 세우고 난 뒤 다음날 일어나 보니 허물어져 있어 기둥을 잘 못 세웠나 보다 하고 이튿날은 더 튼튼히 세워서 지붕을 올린 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또 집이 허물어져 있지 않은가.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하고 다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후 이날 밤에는 겨우 지붕만 올리고 벽도 없는 집이지만 새로 지은 집 안에서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도깨비가 나타나 너는 왜 허락도 없이 내 집을 차지하고 있느냐? 어서 썩 나가거라.” 하고 호통을 치는 게 아닌가. 그제야 지금까지 집을 부순 것이 도깨비라는 사실을 깨닫고 생각해 보니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도깨비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어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사정을 하였다.

도깨비님! 나는 살 곳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매던 중에 이곳이 가장 마음 편히 살 곳이라고 생각되어 머물렀으니 제발 이곳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하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이에 도깨비는 네가 제법 땅을 볼 줄은 안다만은 이곳은 옛적부터 우리 도깨비들이 사는 마을인지라 사정이 딱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 고향 마을인 이곳을 너에게 넘겨주면 우리도 고향을 잃게 되니 다른 곳을 찾아보아라.” 하고 일언지하로 거절하였다. 정착인은 도깨비가 거절하면 할수록 이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확신이 생겨 이곳을 떠나기 싫었다.

도깨비님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꼭 이곳이 아니라도 어디서나 살 수 있지만 나는 농사짓기에 알맞은 이곳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참을 생각하던 도깨비가

허허! , 고집이 매우 센 놈이로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한발 양보하마. 그 대신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겠느냐?”

, 알려만 주신다면 그리합지요.”

네가 집을 지은 이 본 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네 그루의 나무를 심고 중앙의 둠벙(연못) 가에 가장 큰 나무를 심어 도깨비들을 모시고 매년 음력 1014일에 당산제를 정성껏 지내주어야 한다. 제물은 도깨비들이 좋아하는 메밀묵과 이곳이 소의 형국이므로 소 발목을 제상에 올려 지내주면 우리 도깨비들은 소의 뒷등에 살며 이 마을에 어떤 재앙이 오더라도 막아주겠으니 그리 알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만약 약속을 어길 시에는 이 마을에서 살 수 없을 터이니 그리 알고 시행하렷다.” 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햇살이 동산 마루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아침이었다. 정착인은 어젯밤 꿈이 생시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도깨비가 시킨 대로 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런 후 이튿날부터 연못의 조금 위쪽에 집을 지으니 집이 허물어지지 않았다. 연못 밑 평평한 땅을 일구어 논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니 해마다 곡식이 잘 되었다. 도깨비 둠벙은 물이 마르지 않아 가뭄 때에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을에 병고나 액운이 들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가 약속을 잘 지킨 덕이라고 하며 자신들도 도깨비에게 정성으로 제사를 지낸다.

우평마을 사람들은 이 제사를 둠벙 옆의 중앙에 심은 당산나무에 도깨비가 깃들어 있는 당산제라 하고 매년 매우 엄격하게 제를 올린다. 제관은 제사 전날부터 찬물로 목욕하고 변소에 갈 수 없다. 당산제 달인 10월에 사람이 죽거나 아기가 태어나면 신성을 더럽혔다 하여 제를 올리지 않고 다음 달인 11월 중에 좋은 날을 택일하여 제를 올렸다. 그뿐 아니라 우평마을 사람들은 당산제를 모시지 않으면 이듬해에 운수가 불길하다 하여 제물을 마련하는데 한 집도 빠짐없이 손수 떡과 음식을 장만하여 방, 곳간, , 천륭 등 집안 곳곳에 빠짐없이 차려놓고 무사히 보낸 올해의 감사와 돌아오는 새해의 행운을 비는 제사를 엄숙하게 지내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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