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사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곽일순 사진가·수필가 

이번 정권 처음으로 영수회담이 열렸다. 여야의 소통 없이 지난 세월이 무려 720일이다. 정작 회합의 뜻을 먼저 전한 건 대통령이었지만 협의문 없이 만나자는 조건을 단 측도 역시 대통령이었다. 이상한 회담 조건에 성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았지만 이재명 대표의 양보로 일단 만남은 이루어졌다. 굳이 의전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다. 만일 퇴장하는 기자를 불러 세우고 15분여의 모두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아무런 성과가 없는 맹탕 방문이 될뻔했다. 바로 회담장으로 들어갔다면 이 대표의 발언이 밖으로 전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의 15분 사전 발언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회담장으로 들어간 이후의 일은 이미 알려졌다시피 대통령이 85%를 말하고 이 대표가 15% 발언했다는 민주당 측의 주장과 70%30%라는 여당 측의 주장이 있었다. 속담에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있다. 말이 많은 건 많은 것이다. 그의 측근에서 흘러나온 말에 의하면 한 시간에 58분을 혼자 이야기한다고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야당 대표를 초청해서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면 이미 담화가 아닌 주입이다. 모두 발언에서 제시한 중요 사안들이 얼마나 주요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중앙이 아닌 지방 정치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주 나타난다. 크게는 공적 회담에서 사적인 대화까지 전혀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발언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말머리만 꺼내면 바로 자르고 들어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꼬무언어를 구사한다. 대통령이 이러한 화법을 사용한다는 건 많이 알려진 소문이다.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만의 착각 증상이다. 스스로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며 지식을 주체할 수가 없다는 착각에서 출발한 자신감이다. 그래서 상대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대화란 주고받는 말에서 출발한다. 일방적 대화는 없으며 강의실에서나 가능하다. 지식을 전해주는 주입식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대화가 아니다. 혼자 말하는 대화는 없다.

노자의 도경에 언자부지(言者不知) 지자부언(知者不言)’이라는 말이 나온다.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자주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되새김질을 할 만한 문구이다. 여기서 언자부지는 그냥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이 많은 사람이다. , 다언삭궁(多言數窮)으로 말이 많으면 수시로 궁지에 몰린다는 의미이다. 다언 중에 쓸 말보다는 해가 되는 말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입이 무겁기 마련이니 당연히 지자부언이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거나 혹은 틀림을 알아도 말보다는 미소로 대하는 사람이 바로 지자(知者)’가 된다. 대화의 목적이 되는 소통은 주고받는 대화의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소통이라고 하지 않는다. 말의 골짜기를 헤매다 스러지는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다. 만일 이재명 대표가 퇴장하는 기자를 불러 세우고 노트해 간 모두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이번 회담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사진만 남았을 것이고 대통령실의 의도대로 되었을 것이다. 민생 운운하면서 민생 듣기를 지극히 싫어하는 심리를 국민 65%는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경제성장률 청신호를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받아서 썼다. 무역 수지가 회복되고 성장률을 높여 잡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다. 일반인인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수출과 수입이 급격히 줄면서 만들어지는 숫자 놀이를 경제부 기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민생을 외면하고 소통을 거부하는 정권과 왜 언론이 합을 맞춰야 하는지 이 또한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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