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달인들-하이데거(1) 『존재와 시간』

현대의 모든 철학이 직접, 간접적으로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존재와 시간, 그 저자가 출세의 달인이었다니? 사실 이 표현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순수하고 진지한 철학자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하이데거가 독일 나치의 협력자였다면,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제부터 그의 족적(足跡)을 차근차근 따라가 보기로 하자.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강사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일약 유명해진 것은 1929년에 발표한존재와 시간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비범했다. 하이데거는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제기되어왔던 모든 철학적 물음들을 자신의 사유 세계 안에서 새롭게 걸러내었다. 그 때문에 당대의 철학적 문제들은 모두 껍데기로 전락하였고, 모든 형이상학은 마치 번갯불을 맞은 것처럼 새롭게 조명되어야 했다. 더욱이 구사하는 언어들마저 매우 독특하였기 때문에, 동시대인들에게는 그 저자가 매우 생소하고 낯선 존재로 여겨졌다. 그 책이 워낙 난해하여, 독일인들 사이에는 존재와 시간은 과연 언제쯤 독일어로 번역이 이루어질까?” 하는 농담도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헌정 받은 스승 후설(현상학의 창시자.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마저 놀라움을 넘어서, (너무 어려워) 실망감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만큼 하이데거는 이미 후설의 단순한 추종자를 넘어선,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논의되어 왔으면서도 실제로는 거의 탐구되지 않았던 존재의 영역을 건드리다 보니, 철학자들조차도 그의 진면목을 몰라보는 실수를 범하곤 했다. 가령, 그 책을 탐독한 사르트르는 그 영향을 받아존재와 무를 펴냈다. 이 책은 실존주의의 이론서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훗날 그 책을 읽어본 하이데거는 이건 내 철학을 잘못 읽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이데거의 진가를 알지 못한 것은 당시 독일의 교육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데거 대신 다른 후보자를 정교수에 임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때 철학자 막스 셸러가 직접 장관을 찾아가, “만약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임명한다면, 당신은 대대손손 망신거리가 될 것이라고 협박(?) 겸 설득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긴 했으되, 하이데거는 살아 있을 때 이미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는 찬사를 세계 철학계로부터 받게 된다. 철학 저서 한 권이 그 저자를 일거에 ‘20세기 철학의 거장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이 담고자 했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먼저, 하이데거는 어두움에 파묻혀있던 존재의 의미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는 (일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현존재, Dasein)의 분석이 앞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현존재란 세계 내 존재이고, 염려(Sorge)이며, 죽음에로 향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죽음을 선취(先取)한 사람, 즉 현존재(Dasein)만이 타락한 일상인(日常人)으로부터 본래적인 자기에게로 되돌아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꾸려갈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 속에 매몰된 현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남은 생애를 보다 더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독려하는 이 작품의 메시지가 당시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였던 것이다.(영광백수 출신,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최근 저서고집불통 철학자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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