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현 시인
물이 완전히 빠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했던 수평선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드넓은 갯벌만이 육지 쪽으로 아득한 지평선을 드러낸 채 펼쳐지고 있었다.
우성은 배가 갯벌 위에 완전히 내려앉자 칸마다 고여 있는 물을 퍼내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그러나 담배도 라이터도 이미 물에 젖어 피울 수가 없었고, 봄이라지만 아직은 차가운 수온 때문에 물에 젖은 온 몸이 그제야 얼음장을 껴안은 듯 떨려옴을 느꼈다.
“이제 집으로 연락해서 배를 예인 해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묘연했다. 육지로 걸어서 집에까지 갔다 오려면 줄잡아 30km 이상 되는 거리인데 이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고 있는데 모랫벌 저쪽 약 1km즘 떨어진 곳에 경운기 한 대가 서 있고 자세히 보니 그 옆에서 누군가가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두우리에 사는 사람이 갯벌에 설치해 놓은 그물에 걸린 고기를 건지러 온 것이리라.”
두 눈이 번쩍 뜨인 우성은 반가운 마음에 그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가서 보니 우성 자신의 또래쯤 됨직 한 30대 사내가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선 우성은
“저어 실례합니다. 배가 침몰해서 죽을 뻔 했다가 살았는데 향화도 집에 연락을 해야 하니 경운기 좀 빌려 씁시다.”
사내는 들은 체도 않고 계속해서 그물만 손질하고 있었다.
“형씨 사정이 긴박해서 그런디 죽어 가는 사람 살리는 셈치고 한번만 도와 주씨요. 그러믄 내가 은혜는 꼭 갚을라우.”
그래도 사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세 번 네 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애원했으나 사내는 요지부동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기 일만 하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우성은
“야이 씨팔놈아 똑같이 어장을 해먹고 사는 처지에 사람이 죽어간다는디 이럴 수가 있냐?”
하면서 일만 하고 있는 사내를 등을 밀어 쓰러뜨렸다.
순간 개펄 위로 벌러덩나자빠진 사내는 쓰러진 채 뒤를 돌아보더니 성난 얼굴로 개펄을 한웅큼 집어 들고 일어나,
“아바 아바 아바 버버버”
하면서 우성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때서야 사내가 귀머거리 벙어리임을 알게 된 우성은 온갖 손짓 발짓을 동원해 미안하다는 시늉과 함께 배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배가 잠겨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임을 어렵게 설명했다.
일반인들보다 눈치가 빠른 그 사내는 사태의 심각성을 금방 알아차리고는 이내 고분고분해 지면서 오히려 우성보다 더 다급한 표정으로 자신의 일마저 팽개친 채 경운기를 몰아 한참 떨어진 곳의 두우리 사람들에게로 우성을 안내해 주었다.
몇 명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의논 한 결과
“우리들이 집으로 가서 향화도에 연락을 해 줄 테니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
는 것이었다. 바다에 물질을 하러 나온 터라 누구 하나 연필을 가져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머릿속에 전화번호를 암기 시켜야 하는데,
“혹시라도 번호를 잊어버리거나 숫자 하나라도 틀려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 우성은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성은 형님 집과 향화도 어촌계장 집의 전화번호를 두우리 사람들에게 두 자리씩 나누어서 따로 따로 암기 시키고는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그들이 입고 있는 비옷의 등 쪽에다가 손가락으로 진흙을 발라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다시 밀물이 되어 물이 밀어 왔지만 밑바닥의 구멍을 막아두었기세 다행히도 배에 물은 새어들지 않았다.
두우리 사람들이 가고 난 후 우성과 그의 아내는 예인선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연락이 제대로 안되면 어쩌나?”
“배가 너무 늦게 오면 또 어쩌나?”
하는 조바심과 온갖 불길한 생각들 때문에 우성은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