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교육지원청은 근대교육의 발상지인 영광교육의 128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광 교육기록 사진전’을 영광문화원에서 6월 12일부터 전시개최하고 있다. 영광신문은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영광군에 전남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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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報 424호> 관보 학부령 제5호 지방공립소학교위치를 정함(1896.9.21.) |
독립신문(1896.9.22.) |
<官報 424호> 학부령 제5호 지방공립소학교의 위치를 정함(1896.9.21.)
• 한성부: 한양
• 3도 관찰사 소재지: 수원, 충주, 공주, 전주, 광주, 대구, 진주, 해주, 평양, 정주, 춘천, 함흥, 경성
• 2부: 개성, 강화
• 개항장: 인천항, 부산항, 원산항, 경흥항
• 주요지역: 제주, 양주, 파주, 청주, 홍주, 임천, 남원, 순천, 영광, 경주, 안동, 안악, 의주, 강계, 성천, 원주, 강릉, 북청
<전체 수정>
영광군공립소학교의 설립은 1896년 9월17일에 공포된 학부령 제5호 「지방공립소학교 위치를 정함」에 의거하여 공립소학교가 설치되는 전국 38개 도시에 영광이 포함되었다는 내용을 관보<424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동년 11월에 6일에 영광군공립소학교 교원에 이종각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관보<476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904년까지 지속적으로 부교원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관보와 황성신문 신문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위 내용을 종합해 보면 영광군공립소학교는 교원과 부교원을 통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영광군공립소학교의 위치와 학생수, 운영형태에 대한 내용은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른 지역 공립소학교의 운영형태를 통해 향교나 양서재와 같은 관아의 건물에서 수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905년 이후 공립소학교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등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가 된 시기여서 일제의 탄압에 의해 전국의 공립소학교가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사료 된다.
애국지사 김철, 영광광흥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우다
□ 영광군 사립광흥학교(1908~1910)
1908년에 영광인들이 뜻을 모아 향교의 명륜당에 설립하였고, 입학생은 50여명이었으며, 당시 학제는 1년간의 속성과정으로 제1회 졸업생 35명을 배출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 훗날 영광지역의 정치·교육·사회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강제병합 반대시위를 계속하다 2년만에 폐교 당하였으며, 이후 영광공립보통학교에 병합되었다.
졸업생으로는 조희충, 조병모, 김철 외 22명이었다. 특히 김철은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 일강(一江) 김철(金澈, 1886~1934)
김철(金澈, 1886~1934)은 전라남도 함평군 출신으로, 본관은 영산(永山), 호는 일강(一江)이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후 1908년 영광에 있는 광흥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9년에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하고 1917년에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10일 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어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데 한 축을 담당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재무부 위원, 교통차장, 지방선전부 부총판 등을 역임하였고, 1925년 박은식이 제2대 대통령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내각에서 외무총장에 임명되었고, 1926년 김구 국무령 체제가 수립되면서 법무장으로 선임되었다. 1934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회의 비서장으로 선임되었으나, 급성폐렴에 걸려 6월에 숨을 거두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追敍)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921년, 우리 손으로 유치원을 세우다
영광유치원은 영광읍 유지 정인수, 박정환, 노창섭, 조희충 등은 관서재 소유 재산 2,000여원으로 영광유치원을 설립하여 1921년 9월 개원하였다. 당시 원아의 수는 50여명이었고 교원은 3명이었으며, 전남지역에서는 순천중앙교회유치원(1912)과 광주중앙교회유치원(1920)에 이어 세 번째로 설립된 유치원이었으며 비종교계 유치원으로는 첫 번째로 설립된 유치원이었다. 최초로 부임해온 이수은 보육교사는 평양 정의여고보 출신으로 정식으로 유아보육교육과정을 이수한 교사였다.
靈光幼稚園 設立(영광유치원 설립)
전남영광읍 유지 정인수, 박정환, 노창섭, 조희충 등이 관서제 소유 재산 2천여원으로 유치원을 설립 하야 9월 1일에 개원하였고, 생도는 50여명, 선생은 3명이다. (동아일보,1921.9.7.)
제1회 졸업식을 지난달 27일에 거행하였는데 졸업아동은 전부 보통학교에 입학케 되었다고 (조선일보,1929.4.2.)
